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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불의 사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참이다. 혹자는 법정에 세워 ‘원칙대로’ 처벌을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사법처리가 국위 손상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의 대표적 논객인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와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역시 이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류근일 교수는 26일 자신의 카페 ‘류근일의 탐미주의클럽’에서 분명한 사법처리를 주장했다. 정치적, 사회적 부담이 두려워 노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못한다면 좌파의 포퓰리즘에 넘어가는 실착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한편 김대중 고문은 잡범 수준의 범죄를 놓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세계에 부끄러운 꼴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을 버리되 조용하게 철저하게 버리자고 주장한다.
두 논객의 주장을 나란히 소개한다.<류근일 온라인칼럼> 노무현 법정에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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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 ⓒ 뉴데일리
노무현을 기소도 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그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워버리자는 견해가 있다.
전직 대통령을 구속 기소하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데서 오는 부담, 그를 법정에 세우는 데서 오는 부작용을 고려한, 그러면서도 그를 기소하는 것보다 더 철저히 매장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아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그러나 한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누가 상황의 필요에 따라 무슨 일을 꼭 하고 싶다고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법율 운영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수사에 기초한 공소사실이 있는 한에는 기소를 안 할 수가 없고, 구속 기소의 경우는 물론, 불구속 기소의 경우라도 일단 기소를 하면 재판을 안 할 수가 없다.
이것은 형사소송의 철칙이다. 대통령도, 검사도, 판사도, 대법원장도 공소사실이 있는데 기소중지를 명하거나 재판을 하지 말라고 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소중지는 예컨대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공작상 필요한 경우에 공소보류를 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형법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노무현에 대해서는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의 의견 차이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더도 어쨋든 재판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노무현이 피의사실을 한사코 부인하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재판은 불가피하다. 전직 대통령임을 고려해서 실체적 진실규명조차 회피하자고 하는 것은, 최고통치자의 일 거수 일 투족까지 사관(史官)들이 모가지를 걸고서 샅샅히 기록했던 왕조시대의 철저함에 비해보더라도 너무나 비(非)국가적이다. 피의자, 피고인이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재판도 하지 말자는 것은 그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도대체 최고 통치자의 사초(史草)를 파묻자는 나라가 나라인가?
그 대신 노무현이 대법원 판결을 받은 후에 대통령이 사면을 해 주는 방법이 오히려 격식상 나을 것이다. 아니면 한 1년 쯤 징역을 살린 다음 국경일 때 사면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노무현을 구속기소 하고 재판하는 데서 오는 정치적 사회적 부담은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하나 제대로 대처할 자신이 없어서, 이른 바 '역풍'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엄연한 피고소인을 기소도 못하고 재판도 못 한 대서야 그것을 어떻게 국가 운영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국가 운영자가 아니라 화덕에 들어간 송장이다.법은 만인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 거기엔 예외가 있어선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좌파 포퓰리즘에 한 발 밀리면 저들은 열 발 밀고 들어온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가?
그럼에도 유력 언론들이 왜 자꾸 "노무현을 소추 하지 말자"는 애드벌룬을 잇달아 띠우는지, 그 까닭을 알 수도 없고 그에 동의할 수도 없다. 국법의 지엄한 권위를 세우기 위해 노무현은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다만, 국민통합을 위해, 그리고 '전직'이라는 정상을 참작해 최종판결 후에 대통령 사면권을 예비하는 경우라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김대중 칼럼> 노무현씨를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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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 뉴데일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주 자신의 홈페이지(사람 사는 세상)를 폐쇄하면서 자신은 이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났다"면서 다만 '피의자로서의 권리'만은 지키고 싶다고 했다. 참으로 졸렬한 발상이다. '노무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전직의 명예'가 무너진 마당에 사법절차에나 매달리겠다니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뿐이다. 노씨가 배운 '그 잘난 법(法)'은 이제 독(毒)이 되어 그나마 남은 자존심마저 마비시키고 있는 꼴이다.
이제 '노무현'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정치인으로서의 긍지도, 좌파 리더로서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그래서 노씨 스스로 홈페이지에서 국민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를 버리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버리는 것인가?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를 기소하지 말고 법정에 세우지도 말고 빨리 '노무현'을 이 땅의 정치에서 지우자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재판 없이 사면할 권한이 없다. 일단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은 후에만 특별사면이 가능하다. 현행법상 유일한 한 가지 길은 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청법 8조에 따라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발동해 노무현사건에 대해 일절 기소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지시할 수는 있다"면서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의 직권남용 논란이 불가피하며, 어느 장관도 정치적·역사적 후폭풍을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권 때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강정구(동국대 교수)씨의 보안법 위반사건에서 검찰총장에게 지휘권을 발동,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것이 헌정사상 첫 케이스였다.
궁색하지만 그것을 노 전 대통령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씨 불기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다면, 또 그것을 실행할 정치적 용기가 있고, 그 후폭풍을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정부 전체의 의지로 법무부장관을 통한 검찰의 기소권 행사 중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몇 가지 국민의 공감대를 두드려 볼 부분이 있다.
첫째,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지금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철저수사를 주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한심한 생각만 남을 것이다.
둘째, 재판이 진행되는 장기간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시간을 낭비할 가치가 과연 있느냐는 주장도 고려해볼 만하다. 노씨가 '나도 살아야겠다'면서 '사실'문제를 가지고 지루한 법정 공방에 나설 것이 뻔한 지금의 상황에서 경제위기 극복에 바쁜 우리가 그런 치졸하고 남루한 논쟁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가 문제다.
셋째,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전직 대통령에 얽힌 뇌물과 법정다툼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 때로는 주요기사로, 때로는 해외토픽으로 지구촌 언론에 등장할 때 우리의 모욕감, 수치심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미국 대통령직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은 그의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전면적 면죄부(a full, free, and absolute pardon)를 받았다. 후임 포드 대통령은 사면령에서 닉슨이 기소될 경우 재판은 수년이 걸릴 것이며, 그동안 정국의 안정은 크게 깨질 것이고 계속되는 찬반논쟁은 이미 물러난 사람을 더욱 폄하시킬 것임을 적시했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노무현씨를 법정에 세우고 벌을 주는 것은 또 다시는 이런 '청와대의 은밀한 돈거래'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과거 대통령들 또는 대통령 가족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없어서, 또는 약해서 노무현게이트가 발생한 것이 아닌 것을 보면, '대통령의 뇌물'은 대통령 개개인의 사람 됨됨이와 격(格)의 문제이지 경고와 백계(百戒)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우리 국민이 노무현씨를 국민적 차원에서 사면키로 하는 데는 한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는'것이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가진 일체의 움직임에 연루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다. 그가 또다른 어떤 계기에 그 어떤 사건을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 그의 번잡한 언변을 늘어놓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가 국민 앞에 자신의 마지막 성실성을 보이려면,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국민의 용서를 받고 싶다면 검찰에 출두하는 방법에서도 장난을 치거나 사안을 이벤트화(化)하지 말 것이며, 검찰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도 보다 겸손하고 피의자다워야 한다. 더이상 '노무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