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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아일랜드 ⓒ 뉴데일리
    ▲ 슬픈 아일랜드 ⓒ 뉴데일리

    아일랜드는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 모양부터가 남한 지도를 빼닮았다. 강대국과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점도 닮았고, 그 때문에 겪은 고난의 역사도, 그런 역사가 낳은 국민적 심성도 그렇다. 민못살고 가난하던 과거를 떨쳐 버리고 단숨에 경제대국의 되었다는 사실까지도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아일랜드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만한 정서가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다. 도쿄대 총장을 지낸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는 한국을 ‘일본의 아일랜드’라고 불렀다.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가운데 민족적 자존심이 가장 강한 나라는 아일랜드였다. 그런 자부심이 잉글랜드에 짓눌려 700년간이나 무너져 있었다. 일제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식민지배의 세월이 35년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20배나 되는 세월 동안 아일랜드 민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영원한 타자(他者)였고, 극복해야 할 필연적 과제였다.
    눈을 들면 바다 아니면 감자밭밖에 볼 것 없던 아일랜드. 19세기 중엽 ‘감자마름병’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굶어죽은(‘감자대기근’) 이 가난한 나라가 IT산업으로 무장한 선진국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단기간에 이룬 기적적인 성공으로 오늘날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은 유럽 국가들 가운데 1, 2위를 다투고, 1인당 국민소득은 진작에 영국을 뛰어넘었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식민본국인 제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다. 우리는 어떤가? 일본은 여전히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잘사는 나라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을 따라잡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잘사는 나라가 되었음에도, 아일랜드인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편집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오랜 세월 지배당한 역사가 이제는 국민성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항적인 민족주의에 길들여진 국민정서가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향유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일까?

    아일랜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러한 피해의식이 어쩌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이 되고, 나아가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난히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를 경험한 민족이 비단 아일랜드인 뿐이던가.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인류의 긴 역사에서 모든 민족은 저마다 처한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이 달랐다. 이를 자각하기 시작한 일부 아일랜드 지식인들은, 편협한 역사의식의 미망에서 벗어나 제 나라의 역사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 점에서도 아일랜드는 역시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가고 있는 셈이다.

    책에서 저자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민족과 종교가 뒤얽혀 벌어진 마찰과 갈등의 양상부터 훑어본다. 토착 게일인, 잉글랜드로부터 이주한 가톨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부터 이주한 신교도 등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살던 아일랜드에서 19세기에 민족 정통성에 대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찰스 스튜어트 파넬이 이끄는 아일랜드 자치운동, 게일 연맹 창설, 아일랜드 문예부흥 운동, 사회주의 노동운동, 부활절 봉기, 그리고 자유국과 북아일랜드 탄생 등 굵직한 사건들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이러한 격동기를 중심으로 저자는 아일랜드 근대사를 그토록 복잡하게 만든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분석한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는 절묘하게 한-일 관계와 중첩되는 것을, 독자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발견하며 놀라게 된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시각과 비슷했다. 잉글랜드인이 아일랜드인을 ‘하얀 검둥이’ ‘하얀 침팬지’라 부르며 켈트족의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기질 때문에 독립은커녕 자치조차 허용할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일본인은 ‘더럽고 게으르고 무지하고, 육체노동에는 적합하지만 복잡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복종적인 어린애 같은’ 열등인간 조선인이 자주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닮은꼴 역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자기폐쇄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시각을 더 먼저 떨쳐버린 지금의 아일랜드는, 여전히 민족주의에 발목이 잡혀 있는 우리에게 좋은 전범이 될 것이다.
    아일랜드는 더 이상 과거에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현재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와 너무도 닮았던 아일랜드가 변화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기파랑 펴냄,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