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면 1

    미국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목전에 두고 있는 워싱턴 도심 한복판에서 시위대가 화염병과 돌을 든 채로 미국 연방경찰과 대치 중이다. 과연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찰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시위대가 화염병과 돌을 들고 있는 상황만 갖고도 발포 할 수 있을까. 실제로 화염병과 돌을 투척하는 행동이 개시된 이후에만 발포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화염병과 돌이 연방경찰관에게 명중하여 인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초래되었을 때에 비로소 발포 할 수 있을까.

    이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왜냐하면 미국 연방경찰의 경우 폴리스라인을 무단으로 넘거나 ‘움직이지마!(Freeze)'라는 지시에 불응하고 움직이기만 해도 곧바로 발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급적이면 ‘살상’이 아닌 ‘생포’ 쪽으로 유도하고는 있지만 급박한 상황 속에서 본의 아닌 살상이 발생했다고 해서 경찰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상황을 경찰이 가장 잘 이해하고 대처한다는 기본 전제조건에 대해 사회 전반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 장면 2

    제1야당 대표이자 차기 일본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대표에 대해 일본 검찰이 ‘지역사무소 압수수색’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오며 불법 정치자금 수사에 착수했다.

    당사자인 오자와 대표는 ‘야당탄압’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에 동조하는 여론은 그리 높지 않다. 자민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일본 국민 60%는 “오자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총선거를 1~2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탄압’으로 비춰질 수 있는 소지가 분명히 있음에도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그만큼 공권력의 핵심인 일본 검찰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한국 같으면 충분히 ‘야당탄압’ 혹은 ‘과잉수사’라는 수식어가 신문 1면을 장식했을 터인데 일본 언론에서 그와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 장면 3

    한 좌파 언론이 ‘1989년 동의대 사건’을 자신들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겠다며 대담하게도 연재기획을 예고하고 나섰다. 해당 언론은 1989년 동의대 사건에서 “죄 없는 경찰관 7명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은 우파가 덧씌운 거짓 이미지이며, 실제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악화되었고, 그나마 7명이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3명만 불에 타서 죽었고, 나머지 4명은 추락하여 숨졌다는 것이다.

    무려 4회에 걸쳐 연재하겠다고 야심차게 들고 나온 첫 기획기사에서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딸랑 두 가지다. “첫째, 경찰의 과잉진압이 원인이고, 둘째, 희생된 경찰 중 일부만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이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참으로 어이없는 결론이다.

    학내분규에서 비롯된 시위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붕괴시키는 상황으로까지 에스칼레이션 되었다면 경찰이 진압작전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더욱이 학생들이 경찰을 감금하고, 그 주변에 인화물질을 쌓아둔 상황이라면 강제진압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정상적인 진압일까?

    # 결론

    ‘과잉진압’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만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일종의 ‘도그마’와 같다. 왜냐하면 용어 자체에 ‘체제부정’과 ‘공권력부정’이라는 선전선동 기법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공권력을 신뢰한다면 ‘과잉진압’이라는 표현은 결코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공권력이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항상 가장 적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권력이라는 것이 때로는 특정 개인과 조직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공권력의 권위가 국가, 사회, 국민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권력을 흔들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무정부상태로 우리 사회를 몰고 가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로 체제부정 세력이자 헌정질서 파괴의 주범이다.

    본래 공권력이라는 것은 그것이 ‘불법’ 혹은 ‘해악’이었다는 것이 제도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기 이전까지는 ‘정당한 것’으로 추정되어야 하고 수용되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좌파 인터넷언론의 시도는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공권력에 대한 평가는 결코 한 개인이나 조직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