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의원들이 27일 전한 설 민심은 한마디로 `경제 또 경제'였다.

    금융에서부터 불어닥친 초유의 위기상황이 실물경제로 이어지며 지역민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이 예상보다 더 컸다는 것. "경제를 살려달라, 먹고살게 해달라"는 하소연이 다른 모든 문제를 덮어 버렸다.

    그러나 식어버린 민심에 대한 해석은 정반대였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경제위기를 맞아 더 잘하라는 `애정어린 질책'이 대부분이었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민심이 아예 여권에 등을 돌렸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벌어진 `용산 참사'에 대해서도 여야가 전하는 여론은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이슈 자체가 묻힌데다 그나마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이었다는 평가와 과도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우려가 반반이었다고 해석했지만, 민주당은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앞에 공권력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고 그 강도도 거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 = 172석 거대여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불만이 비등했지만, 그마저도 경제 위기 앞에서 기세가 꺾였다고 한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해 달라는 주문이 빗발쳤고, "여당 만들어주면 뭐하냐", "정치 좀 잘하라"는 질타도 이어졌다. 

    서울 성북갑이 지역구인 초선의 정태근 의원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치 잘해라, 일 좀 잘해라 질타가 많았다"면서 "왜 이렇게 인사를 못하느냐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거대 여당이 뭐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사람들은 미디어법이 뭔지도 잘 모르고, 쟁점법안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면서 "밑바닥 정서가 굉장히 안좋다. 경기가 워낙 어려우니까 설 인사하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가 지역구인 4선의 김영선 의원은 "서민은 용산사태, 내각개편, 쟁점법안 이런 문제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면서 "실물경제 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는 것 같다.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까 매 때리기도 겁나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경기 포천.연천이 지역구인 김영우 의원은 "용산 문제에 대해서는 공권력의 정당한 집행이라는 의견과 사려깊지 못한 작전이었다는 비판 여론이 반반이었고, 오히려 이번 사태가 제2의 촛불시위처럼 정치 쟁점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면서 "경제가 어렵다는 걱정이 제일 많았고 이력서를 쥐어주며 취직 좀 시켜달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충북 제천.단양이 지역구인 송광호 최고위원은 "172명이나 뽑아준 한나라당이 왜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지 못하느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텃밭'인 영남권 민심도 만만치 않았다.

    대구시당위원장인 재선의 서상기 의원은 "경제가 워낙 어려우니 다른 불만은 다 묻혔다"면서 "자영업자, 택시, 재래시장에서 느끼는 위기도 매우 컸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감원에 대한 공포가 컸다. 정치나 용산 이런 문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한가한 축에 속했다"고 혀를 찼다.

    경북 구미갑이 지역구인 3선의 김성조 의원은 "국회의 여러 행태가 실망스럽고, 다수당으로 뽑아줬으면 역할을 해야지 한나라당 뭐하는 짓이냐는 비판이 많았다"면서 "경제가 어려운데 정부를 뒷받침해야할 국회에서 싸움이나 하고, 무기력한 한나라당 책임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부산 서구가 지역구인 재선의 유기준 의원은 "경제살리기에 힘을 합쳐달라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고, 경남 양산의 허범도 의원은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줬는데 과단성있게 가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지역구를 다닐 때마다 죄송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 야당 = 지역을 막론하고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고 "경제가 살아날 수 있겠느냐"는 불안감이 팽배했다고 한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감이 어느 때보다 깊어졌지만 무엇보다 정부여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권에 대해 싸늘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야당 의원들은 전했다.

    대전 서구갑이 지역구인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딱 한마디로 얘기하면 '힘들어서 못살겠다'는 것이고 그 다음이 경제가 언제 살아나느냐는 것"이라며 "가는 데마다 원성이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북구갑 강기정 의원은 "지난 추석 때는 정부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는데 이번 설 때는 기대가 전혀 없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고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지역구 정서를 전했다.

    경기 시흥 조정식 의원은 "비교적 우량하고 건실한 중소기업들도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얘기가 많았고 젊은 자식 가진 부모들은 일자리 걱정을 했다"며 "경제사정이 쉽게 나아질것 같지 않고 한해가 걱정이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용산 참사'와 관련해 공권력에 대한 질타와 함께 책임자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다수였고, 최근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충북 증평군 등 4개군이 지역구인 김종률 의원은 "용산 참사와 관련해 공권력이 무리하게 과잉진압하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질타가 많았다"며 "이명박식 정치행태의 부산물이 아니느냐는 지적도 있었고 책임자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다"고 말했다. 

    조정식 의원은 "추운 겨울에 철거민을 세게 밀어부쳐 사고가 났다는 얘기가 많았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연말연초 `입법전쟁'과 `용산 참사'를 거치면서 다소 애정어린 분위기도 감지됐지만 아직은 국민의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도 다수를 이뤘다.

    한 충청권 의원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은 깊어졌지만 여전히 민주당에는 별다른 관심과 기대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한 호남권 의원은 "정부 여당에 대한 불신이 민주당의 '입법투쟁'과 겹치면서 지지와 격려의 목소리도 있었다"며 "확실히 호남권에서는 민주당의 이미지가 많이 개선된 것같다"고 전했다.

    제3 교섭단체인 자유선진당이 전한 설 민심도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충남 천안을이 지역구인 박상돈 의원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은 대화 부재의 'MB식 정치'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매우 컸다"고, 충남 아산시 이명수 의원은 "이명박 정부나 국정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