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6명을 살해한 정상진의 일기장이 22일 공개됐다. 정상진의 일기장은 총 4권으로 2005년부터 작성돼온 것으로 보이며 자신에 대한 비관과 세상에 대한 증오가 가득 차 있었다. 일기장은 불에 타거나 소방대의 살수로 물에 흠뻑 젖어 있었고 경찰이 발견, 압수해 이날까지 건조 작업을 벌여왔다.

    정상진은 일기장에서 "나는 잘못 태어났다. 존재가치가 없다"는 말을 자주 되풀이했다. 여자 형제 4명은 각각 생년 차가 3년으로 부모의 계획에 따라 태어났지만 막내인 자신만 셋째와 9년이나 차이가 나는 등 우연히 탄생했다는 것이 자기 비하의 시초였다.

    정상진은 "그냥 낳고 보자는 식이었지. 종자가 좋지 않으니 삶이 좋을 수 있겠느냐고. 처음부터 끝까지 '쌩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나 나고.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라며 자신의 삶을 비관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상진의 자기비하적인 사고는 중학교 때 두 차례 자살을 불러왔고 이후에도 계속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또 정상진은 실패작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신이 내게 두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복권 100억원이 당첨되는 것보다 이 지구별을 우주 속의 먼지로 폭파시켜달라고 할 것이다"며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표현했다. 그는 일기장 곳곳에 "사람들이 싫다.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는지 모르겠다" 등의 내용과 함께 특정인을 지목하며 "OOO! 이리와봐. 난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어. 얼마나 내가 만만하게 보였으면…." 이라고 적기도 했다.

    정상진이 일기장에 "조국은 나를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 내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무대포' 정신. 악으로 깡으로"라고 쓴 것은 이전부터 이번 범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진다. 또 그는 경찰조사에서 "2005년부터 살인을 준비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제는 마무리 할 때가 됐다" "나의 피로 조금이나마 자극이 될 수 있다면 난 서슴없이 이 한 몸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지구의 모든 불쌍한 이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겠다" 등의 기록을 일기장에 남겼다.

    정상진은 이 사건을 영화나 게임에 비유해 "바람과 함께 나타나 바람과 함께 사라짐. 라스트 포인트 게임종료. 내 인생 마지막 하이라이트. 멋지게 끝내자. 마지막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이라고 적었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진은 예전부터 강한 범행 의지를 품고 발전시켜온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시원 투숙자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시한폭탄과 함께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