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에 대한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의 정신적 침식 작용은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교육 재난'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성출판사가 펴낸 왜곡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전체의 56.6%로, 약 1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것이다. 이 책이 이처럼 많이 팔린 이유는 교과서 선정의 관건을 쥐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에 대한 특정 교사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믿고 수호하려는 학부모들로서는 앉은 자리에서 자기 자녀들의 영혼을 엉뚱한 사람들의 엉뚱한 세뇌교육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걸 그냥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우려와 비판이 있어 왔다. 그 책이 '대한민국 60년사'와 '북한 60년사'에 대해 심히 온당치 않은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그런 적절치 않은 역사인식에 물드는 것을 원치 않는 학부모들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녀들이 괴한에게 유괴당하는 일이다. 유괴란 반드시 신체적인 납치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납치하는 것이야말로 유괴 중에서도 가장 질(質) 나쁜 유괴다. 상상해 보자. 괜찮던 아들 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부모 앞에 다가와 "그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왜 만들어 가지고 나라를 두 동강 냈느냐?"며 '생깡'을 부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부 청소년들은 이미 해방 후 한국 현대사에 관해 그런 '사이비 종교'의 거짓말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 "멀쩡한 나라를 미국과 친일파가 분단시켰다, 남한은 식민지 종속국이고 북한은 민족자주다" 운운하는 괴담들이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상식처럼 번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즉석에서 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도 않다. 이런 추세를 끊어놓지 않는 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건국을 '나쁜 것'으로 보는 사람들로 꽉 차 버릴 날이 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그래서 이미 늦었기는 하지만 학부모, 시민사회가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다.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를 거부하는 대대적인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다고 꼭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다 할지라도 그런 운동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운동이나 투쟁은 처음부터 성공을 보장받아 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싸우다 보면 큰 해일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운동이다.

    도대체 교육을 통해 자기 나라 건국을 '죄업(罪業)'인 양 비틀어 보이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 또 있나? 청와대, 내각, 교육부, 교육청, 한나라당 사람들 모두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들이 이 심각한 '교육 재난'에 정색을 하고 달려들 때까지, 왜곡된 현대사 교육 퇴출을 위한 국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야 한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를 장악한 지난 10년의 편향된 이념의 굴레는 여전히 각계각층에 뿌리내려 있다. 방송의 경우는 이제 겨우 공영방송의 사장을 바꾼 정도이고, 교육현장의 사상적 편향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형편이다. 인터넷 포털은 아예 '남의 나라'이고, 범법자들은 걸핏하면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성역(聖域)으로 들어가 활개를 친다. 이러고도 나라요 정부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어차피 5년 이상 대통령을 할 수도 없고 더 미련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앞으로 5년 동안 나라의 '나라다움'을 되찾는 일에 목숨을 던져도 괜찮다. 무엇을 주저하는가? '나라다움'의 핵심 요건 중 하나는 바로 제 나라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가지게 하는 교육이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은 찬반 여하간에 원칙을 위해 목숨을 걸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실용 대통령'뿐 아니라 '원칙 대통령'이 돼야 한다.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가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과감하고 적절한 결단을 내릴 때까지 세찬 투쟁을 일으켜야 한다. 역사를 빼앗기면 전부를 잃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