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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내가 경제 좀 안다…"면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내가 경제는 좀 아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말 가운데 제일 듣기 거북하고 민망스러운 것 중 하나다. 그는 입만 열면 '경제'를 언급하고 '경제 살리기'를 그의 제1차적 중심과제로 내세우는 데 열중해 왔다.
그런데 그가 취임한 지 7개월이 다 된 지금, 그가 잘 알고 또 잘하겠다던 '경제'는 어떻게 됐고 어디로 가고 있나? 물가는 근래 드물게 오르고 있고 부동산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졌고 주식시장은 널을 뛰고 있다. 투자가 더 이뤄진 것도 없고, 실업이 줄고 고용이 늘었다는 통계도 없다. 한마디로 경제 잘된 것 하나도 찾기 어렵다.
물론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반드시 국내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유가(油價)와 세계의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고 근자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국의 발등에도 튀어 환율과 주가가 크게 요동쳤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사태를 30년대 미국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이 상황에서 국외적 요인에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무죄인 양 처신할 수 없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신뢰 상실, 일관성 결여 그리고 관리능력 부재가 경제불안의 중대한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경제상황은 내우(內憂)에 외환(外患)이 겹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내 기업가들과 만나는 자리마다 "투자해달라"고 다그친다. 투자할 여건이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하는 것이 기업이다. 언필칭 시장경제 한다면서, 스스로 경제를 안다면서 투자를 구걸(?)하는 듯한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도 처량하고 안쓰럽다.
이 정부의 문제는 '촛불'에서부터 비롯됐다. 외국인들은 쇠고기 광우병 사태에서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적 성향'(nationalistic trend)과 쏠림 현상을 발견했고 이런 시위에 3개월 이상 끌려다닌 이명박 정부에서 관리능력 부재를 목격했다. 이미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이전부터 외국인 투자가들은 앞다투어 돈을 빼내갔다. 금융위기설에 이어 한국의 증권시장은 그때 이미 큰 병(病)을 얻었다.
거기서부터 휘청거린 이 정부는 주택과 부동산, 세금조정, 공기업 민영화, 균형도시 문제 등에서 우유부단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를 논하기 전에 정책의 일관성을 잃었다. 한번 정하기 전에 신중히 논의하고 그 바탕 위에 결정했으면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경제를 안다"고 행세만 하지 말고 국민이나 대기업이나 외국투자가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믿음성과 결단성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 때 "내가 경제를 알기는 뭘 안다고 나서겠느냐"면서 "참모들이 인플레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하기에 결재할 때마다 물가 잡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냐고 묻고, 된다면 사인하고 안 된다면 결재 안 한 것뿐"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좀 모르는 것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고 신중하게 만든다. 그런 자세에서 숙고(熟考) 끝에 나오는 발언과 정책이 보다 믿을 만하다. 작가 박완서씨는 엊그제 조선일보 북 섹션 기고에서 "우리가 미처 발견 못한 미(美)를 먼저 발견한 안목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안목에 대한 자긍심 때문에 흔히 과장되거나 선동적인(문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치에도, 리더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좀 안다고 나서면 움직임(모션)이 커지고 말이 앞서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건설계에서 일한 것이 거의 전부인 이 대통령의 '경제 이력'을 경제전문가로서의 자질로 평가하는 데 인색하다. 또 그가 막강한 권위의 오너 밑에서 과연 제대로 CEO로서의 자질과 책임을 훈련받을 수 있었겠는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 대통령이 정치인이 판치는 대선전(戰)에서 경제를 내세워 '경제를 아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까지를 무의미하게 보지는 않지만 거기까지다.
이제는 이 대통령이 경제의 막중함 앞에서 좀 겸손하고 자중하며,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거기서 의견을 모아 내놓은 경제정책들을 국민과 세계 경제계가 신뢰하는 쪽으로 이끌고 가는 지도자로 거듭났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