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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 '이 대통령의 승부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취임 초반에 이미 자신의 특장인 자신감과 추진력을 상실한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임기 4년 반 정부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걱정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난감하고 불안하다. 국민들로부터는 신뢰를 잃고 우방세력으로부터는 깔보임을 당하고 있는 이 정권의 입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크게 볼 때 남은 관건(關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대통령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이 대통령을 선택했던 보수·우파진영이 어떻게 처신하느냐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 좌파세력과의 전선(戰線)은 이미 분명해졌다. 그는 한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요량으로 실용(實用)을 내걸었지만 좌파는 'MB 아웃'으로 그를 걷어찼다. 거기엔 협상이나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대통령에게 그나마 타협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쪽은 보수·우파세력이다. 비록 우파·보수는 MB의 실용을 기회주의 포퓰리즘으로 낙인 찍고 있지만 그래도 MB정치의 앞날은 싫든 좋든 보수진영과의 관계에서 설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우파마저 잃으면 그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우파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당면한 몇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불법(不法)을 단호하게 다스려야 한다. 불법데모, 뇌물정치, 기득권 안주, 떼법 정서를 과감히 척결하는 데 정권의 진퇴를 거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져갔다는 대통령실 기록물의 반환도 법치의 차원에서 처리하는 과단성이 아쉽다. KBS사장 문제를 처리하지 못해 우왕좌왕 끌려 다니는 대통령은 너무 무기력해 보인다. 공기업 민영화, 지방균형도시 문제, 작은 정부의 실행 등도 정치적인 후퇴가 아닌 정책 자체의 장단성(長短性)에 따라 처리하는 결단력과 추진력을 되찾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특히 대북문제에서 초심을 잃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 좌파에게 크게 얻어맞았다고 대북문제와 금강산 피살사건에서 비틀거리는 MB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보수·우파는 없을 것이다. 독도문제도 국민의 감정과 정서의 흐름에 내맡겨 반일(反日)감정에 편승하기보다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는 논리를 국제사회에 제시하는 이성적 접근을 해야 한다. 앞으로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비용문제에서도 이 대통령의 대응이 우파와의 관계에서 어떤 점수를 얻은 것인지를 가름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그는 어차피 더 잃을 것이 없다. 지금처럼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고 '촛불'에 쫓겨(?) 청와대 뒷산에나 올라가고 '친박'에 밀려 버스 떠난 뒤 손을 드는 수준의 처신으로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 대통령은 승부수를 준비해야 한다. 헌법적으로 무리가 있겠지만 드골이 개헌을 내걸고 자신의 진퇴를 걸었듯이 국민에게 시간을 얻어 신뢰를 회복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진퇴를 제시하는 정도의 승부수를 던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자신 지리멸렬하게 4년 반을 보낼 만큼 무기력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파·보수진영의 태도에도 있다. 한 MB측근은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지난 5년간 노무현 대통령이 많은 실정(失政)을 했음에도 좌파신문과 방송들은 안면몰수하듯이 그를 지켜주고 지지했는데 지금 보수·우파세력, 특히 보수언론들은 3개월도 못 기다리고 MB를 무엇 패듯이 두드렸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것이 우파의 장점이고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좌파가 쇠고기 수입문제로 '대통령 퇴진'까지 몰고 가는 과정에서 보수·우파가 어떻게 대응하고 처신했는지는 충분히 되돌아볼 만하다. 대통령을 좌파 못지않게 욕질해대 온 일부 우파진영의 태도는 과연 '잃어버린 10년'으로부터 '빼앗은 5년'을 지키고 누릴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한 것도 사실이다.
이 대통령도, 그를 뽑은 보수·우파 진영도 여기서 숨을 고르고 지금까지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칼자루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 현상에 안주하며 '땜질식 정책'으로 그때그때 모면하면서 보수·우파진영 뒤에 숨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면 그의 미래는 어둡고 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 우파진영도 '구경꾼'에 머물며 좌파의 공론에 이끌려 가기보다는 MB의 '칼'을 보호해줄 '칼집'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라면 설사 5년 후 좌파에게 정권을 넘겨준다고 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때의 좌파는 '친북이 아닌 좌파'로 성장해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