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4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가 사이버 공간의 불법과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인터넷 이용자들이 포털 등에 가입할 때 신분사항을 제출토록 하는 '본인 확인제'를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하루 이용자가 30만 명 넘는 포털·UCC 사이트와 20만 명 넘는 인터넷 언론에만 적용해 오던 본인 확인제를 10만 명 이상 사이트 전체로 넓힌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에서 익명(匿名)으로 벌어지는 갖은 불법과 사이버 폭력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 확인제만으론 한계가 있다. 일부 사이트는 자기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알리지 않고 사무실 전화나 휴대전화 번호만으로도 등록할 수 있어 얼마든지 본인 확인을 피해 갈 수 있게 돼 있다. 또 대부분 사이트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ID나 필명을 만들어 쓸 수 있게 해놓아 누구인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처럼 인터넷이 온통 욕설과 거짓말과 협박과 선동의 쓰레기장, 배설장이 돼버린 나라는 세계에 다시 없다. 지난해 한 젊은 여가수는 성형 의혹 등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네티즌들은 그녀가 죽고 나서도 "간만에 미소 지어지는 훈훈한 소식" "잘 죽었다" 같은 댓글을 붙였다. 어느 회사원은 인터넷에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요구해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비난 글이 퍼지고 휴대전화 번호와 사진이 공개돼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다음 '아고라'엔 '폭력 전·의경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전경 얼굴사진, 소속 부대, 입대 전 다니던 학교, 개인 홈페이지 주소까지 실려 "죽여라"는 댓글과 협박, 욕설로 뒤덮였다. 우리 인터넷엔 이런 인격 살인이 상시(常時)로 벌어진다. 모두 익명의 가면을 쓰고 있기에 함부로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다.

    결국 인터넷은 네티즌이 글을 올릴 때 반드시 실명(實名)을 쓰도록 하는 '인터넷 실명제'로 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하지만 지금은 자기 의견을 밝혔다고 해서 탄압과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든 정부와 권력을 거리낌없이 비판하는 세상이다. 다만 그런 비판을 사실에 근거해 정당한 표현과 논리로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익명을 고집하는 것은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사이버 폭력을 계속 방치하자는 얘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