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정국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법·폭력화된 촛불시위에 비판 여론이 일면서 시위자제 목소리가 확산되는가 싶더니 진보성향 종교계가 '이명박 퇴진'을 들고 나서며 사태는 다시 꼬이는 양상이다.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위기상황의 경제 회복을 위해 힘 모아야할 때"라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 두달간 끌어온 사회 혼란을 타개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폭력 종교행사'로 무장한 진화된 시위대 앞에 정부의 법 질서 원칙에 입각한 시위 대응 방침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개원이 요원한 상태에서 국정공백 우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내각 개편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사태를 장기화시킨 과정에서 이 대통령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지나치게 시간을 끌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결과만 낳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인적쇄신도 그랬고, 대국민사과 발표 시점 그리고 미국과의 쇠고기 추가 협상도 마지막에 가서야 결정되면서 국면 전환을 유도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거듭된 '장고 뒤 악수'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사상 최대 표차인 500만표 이상 압도적으로 당선된 '힘있는 대통령'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쇠고기 논란 속에서 '우군'을 찾기 힘들었다. "직원없는 CEO"라는 자조섞인 얘기도 나왔다. 시위 초기 '광우병 괴담'이 인터넷 공간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가고 친북좌파 성향 단체들이 집결할 때 이를 차단하고 균형을 잡을 지지 세력은 무기력함을 보였다. "어느 나라가 국민을 해치는 해로운 고기를 사다 먹이겠느냐"(5월 8일)고 이 대통령이 항변할 때 여당과 보수 진영은 '몸사리기'에 급급하거나 10년만에 찾은 정권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청와대 참모진 역시 전면에 나서길 꺼렸다. 결국 이 대통령 혼자서 모든 화살을 맞아야했다.

    지난 5월 22일 민심수습을 위한 첫번째 대국민담화 발표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여러분께 송구하다"면서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내탓"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특별회견에서도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 내 자신을 자책했다"며 자신에게 회초리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여러분이 뽑아준 대통령을 믿어주십시오"라며 절실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을 향해 "입을 닫고 귀를 열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모든 일을 대통령이 주도하려 말고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과 소통하라는 당부였다. 이후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도 하지 않을 정도로 '침묵'을 지켰다. 대신 정계, 종교계, 시민사회 원로들과 만나며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그 사이 촛불시위는 점차 조직화, 폭력화를 더해갔고 정부는 이렇다할 민심수습책을 제시못했으며, 여당도 거리로 나간 야당을 끌어안지 못했다. 

    정부의 대응 방식도 말그대로 '갈팡질팡'이었다. 쇠고기 협상에 뒤따른 국내 반발을 예상치 못한 정부는 초기 시위 배후세력을 의심했다가 괜한 역공만 받았다. 한미FTA 타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명분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소통'이나 '신뢰 회복'같은 모호한 구호로 전환됐다. 청와대는 지난 5월초 "흥분과 감성이 앞선 소모적 논란을 접고 이성적 판단을 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사태 악화를 '괴담' 탓으로 돌렸었다.

    지난달 24일 이 대통령은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엄격히 대처해야한다"며 "이제 쇠고기 문제로 인한 여러 논란을 끝내고 경제살리기를 위한 국면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서민 피해를 우선해 막아야 한다"는 점을 정부에 거듭 당부했다. 청와대도 "7월부터 취임 초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 대통령은 1일 충북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힘을 모으면 어느 나라보다 먼저 위기를 탈파할 수 있다"며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쇠고기 논란 속에서 정부의 민생 대책, 향후 정책 추진 준비 등이 미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에 청와대 핵심 참모는 "이 대통령이 그냥 놀고 있었을 분이냐"고 말했다. 새롭게 출범한 2기 청와대 참모진에게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1일 이동관 대변인은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과 만나 '소통'했으며, 맹형규 정무수석은 임명 후 두번째 청와대 기자실을 찾았다.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도 대외 접촉면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국민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줬던 '이명박 DNA'를 7월에는 다시 보게될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