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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광풍에 부딪혀 거리시위에 대해 미온적 대응에 그쳤던 정부가 기초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1일 국무회의에서 "정부는 합법적인 국민의 소리에는 겸허히 귀를 기울이겠지만 도로점거, 기물파괴, 경찰폭행 등 불법 과격시위에 대해선 엄정 대처할 수 밖에 없다"며 "검찰, 경찰을 비롯한 유관부처는 법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불법·폭력시위를 차단하고 법질서 회복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한 총리는 "평화적으로 시작된 촛불시위가 순수성을 찾기 어려울 만큼 목적이 변질되고 불법, 폭력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 "경제, 국난적 상황 틀림없어…지금은 지혜모을 때" = 정부가 거리시위 전면 차단에 나선 첫번째 이유는 '경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달 30일 "경제상황이 쇠고기 논란, 남북문제로 가려져 그렇지 국난적 상황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를 앞세워 국민을 겁주는 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1년전보다 유가가 세배 올랐다"면서 "지금은 지혜를 모아야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유가가 배럴당 50달러가 넘으면 위기상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었지만 현재 상황은 150달러를 육박하는 지경이다. 주유소 휘발유값은 200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 성장률을 4.1%로 전망했다. 새 정부가 목표했던 '747(경제성장률 7%, 개인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실현은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고유가와 원자재값 폭등 등 외재적 요인이 몰아치는 동안 거리로 나온 촛불시위는 내부에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경련 등 경제5단체장들은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살아난 투자 분위기가 촛불시위로 다시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황인학 전경련 상무는 "경제변수 외 기업환경을 둘러싼 안정성 등 정치사회적 요소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며 "촛불시위 등이 장기화되면 기업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쇠고기 고시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쇠고기 문제로 인한 여러 논란을 끝내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면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살리기 문제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면서 "이런(쇠고기 파동에 따른 국정혼란) 상황이 계속되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서민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2일경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보다 적극적인 혼란 타개노력 주문에 청와대 핵심참모는 "7월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논란으로 이 대통령의 외부노출이 줄었지만 밑에선 하반기 경제운용계획, 공기업 선진화 등 기타 여러가지 분야에 대한 조율과 협의, 보고가 이뤄졌다"며 "알다시피 이 대통령이 그냥 놀고 계실 분인가.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곧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국민 여론에 해답있다", '시위중단, 국회등원' 요구 확대 = 국민 여론의 요구는 정부와 시위대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여론은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더이상 촛불시위도 안된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국정 주도권을 쥐지 못해 민생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지난달 28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촛불시위 중단 의견이 57.2%로 '계속하라(37.9%)'는 주장을 밀어냈다. 또 촛불시위가 쇠고기 문제를 넘어 정권 퇴진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보는 시각이 무려 66.9%나 됐다. 폭력시위에 대한 반감(76.3%)은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현(22.0%)이라는 주장을 압도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초시 촛불시위의 명분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여론의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시위양상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 법치주의라는 범위 안에 있는지, 한참 넘어선 것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상황"이라면서도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와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심하고 또 고심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여론에 힘입어 국력 소모를 중단하고 '경제살리기' 모드로 시급히 전환해야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여론의 변화는 야당의 국회 등원도 촉구하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실시 예정이던 '고유가 민생종합대책'은 국회가 관련법을 개정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하지만 '의원님의 출근'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18대 국회는 아직 원 구성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다. 정부 개각도 함께 미뤄지고 있다. 청와대는 청문회 등 국회 일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정 공백을 초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 등 사회 원로 18명은 30일 '2008 위기 극복을 위하여 호소합니다'라는 시국성명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계속된 촛불시위가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법치를 무력화하고 있다"면서 "이 난국을 초래한 일차적 책임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있다"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국민도 총체적 위기가 지속될 경우 사회공동체가 해체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