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이 뽑아준 대통령을 믿어주십시오" 

    19일 쇠고기 논란으로 두번째 국민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은 진솔했다. 이 대통령은 가감없는 표현으로 사과와 자성의 뜻을 밝히며 국민의 이해와 협력을 호소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이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은 약 13분간의 회견문 낭독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포함, 1시간 가량이 걸렸다. 회견장에 들어선 청와대 참모진의 표정에도 숙연한 분위기가 가득했으며 일부 수석은 이 대통령이 회견문을 읽는 동안 내내 떨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국민들께 저간의 사정을 솔직히 설명드리고 이해를 구하고 사과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22일 대국민담화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유감의 뜻을 전하고 가감없이 쇠고기 협상 전후 과정을 속시원히 털어냄으로써 '쇠고기 정국'을 매듭짓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회견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임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 대통령 강도높은 자성, 비서진 '숙연' = 이 대통령은 "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나는 마음이 급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에게 먼저 채찍을 들었다. 

    이 대통령은 한미FTA 연내 처리를 위해 쇠고기 협상이 불가피했음을 설명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러다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고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면서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도 국민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했다. 나와 정부는 이 점을 뼈저히게 반성하고 있다"며 또한번 고개숙였다. 

    이 대통령은 또 "취임 두 달 만에 맞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교훈을 재임 기간 내내 되새기면서 국정에 임하겠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다" "국민 뜻을 받들겠고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는 등 거듭된 표현으로 국민적 이해를 구했다. 일문일답에서도 "여러분이 뽑은 대통령을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 "촛불 행렬 보며 자책", '추가협상'선택 심경밝혀 = 지난 10일 대규모 촛불시위를 떠올리며 이 대통령은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 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며 착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그는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면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했다. 늦은 밤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 없이 내 자신을 돌이켜보았다"며 사과한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힌 청와대 직원들도 많았다.

    이 대통령은 이어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민은 미국과의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재협상의 어려움만 설명하려고 했고, 이런 태도가 국민 여러분께는 정부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비친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정치권에서 내게 '일단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고 보자'는 이야기도 했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내 정치적 입장만을 고려했다면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을 것이며, '재협상한다'고 선언했다면 당장은 어려움을 모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서 많은 갈등을 한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온갖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데 제가 무엇을 위해 고집을 부리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뒤 "그러나 나는 대통령으로서 국익을 지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후유증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며 이해를 구했다.

    ◇ "촛불거리에 희망의 빛을" =
    이 대통령의 회견은 단순히 자성과 사과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위기극복을 통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면서 회견을 마무리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시 국민여러분께 다가가겠다"며 "국민여러분도 나와 정부를 믿고 지켜봐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다"는 마지막 부분에서 점점 톤을 높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당초 대국민담화와 간담회로 진행하려다 '특별기자회견'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논란도 있었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쇠고기 추가 협상이 마무리될 경우를 예상해 최종 매듭짓는 자리로 준비했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아 급히 바뀌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지적이 나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은 진솔하게 사과하는 입장을 밝히고 국정운영 방향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자리인 만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담화보다 질의응답이 있는 기자회견으로 했다. 문안에서도 큰 틀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대변인은 "회견문에서 '자책'이라는 표현도 있었고 '뼈저린 반성'이라고도 했다. 단순한 사과의 표현보다 진정성을 담아 국민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회견문은 회견 시작 1시간 가량 앞서 전직 국무총리 등 각계 지도층 인사를 비롯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주요 단체, 그리고 종교 5단체 등에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