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매우 난감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론자였던 그였는데 '쇠고기 파동'에 휩쓸려 결국 한·미 FTA를 외면한 모양새가 됐다.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할 손 대표의 이런 행보는 그의 향후 계획에 적잖은 타격을 줄 수 있고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을 표방하자 "가슴을 치고 땅을 쳤다"고 할 만큼 손 대표는 이념적 성향은 분명 '좌파'가 아니다. 손 대표는 그동안 민주당이 개혁적 이념 노선을 견지해왔다면 이제 중도를 향해 가야 한다며 우클릭을 요구했다. 그가 '제3의 길' '새로운 진보'라는 당의 노선을 제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로 인해 '정체성' 논란도 있었고 '한나라당 2중대'란 비아냥도 받았지만 손 대표는 자신의 정치지향점을 '선진'으로 삼고있다. 하지만 최근 손 대표의 행보는 이와 거리가 멀다. '쇠고기 정국'속에서 '강한 야당론'이 급부상하면서 손 대표가 발목을 잡힌 상태다. 자신의 정치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장외투쟁'을 했지만 손 대표는 썩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최근 계속 등원 필요성을 역설한다. 등원을 요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고 각계 원로들을 잇따라 만나며 내부 강경 인사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손 대표 행보는 매우 어정쩡한 모습을 연출한다. 최고지도부 회의땐 맨 가운데 앉아 회의를 주재하지만 손 대표의 발언은 이후 쏟아지는 당직자들의 발언과 온도차가 매우 크다. 당의 간판임에도 좀처럼 당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13일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손 대표는 등원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우리 당의 역할, 국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고민은 정말 심각하다"며 "국회 역할은 무엇인지 심각한 문제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 뒤 나온 원혜영 원내대표와 최인기 정책위의장의 주장은 사뭇 달랐다. 원 원내대표는 "국민 요구는 한결같이 재협상 하라는 것인데 정부는 재협상 불가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무조건 등원하라는데 정말 안타깝다. 국민을 외면한 채 국회를 연다고 해서 국민 불안이 해소될 수는 없다"며 재협상 없이는 등원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고 최 의장도 "재협상 해결 없이는 국회에 등원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의 등원 요구를 자당 지도부가 앉은 자리에서 거부한 것이다.

    손 대표는 체면도 구겼다. 민주당은 7월 6일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쇠고기 정국'에 가려져 있어 벌써 '흥행'은 물건거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문제는 이 전당대회를 두고도 당내 잡음이 크다. 12일에는 천정배 의원 등 전·현직 의원 16명이 전당대회 연기를 요구했고 지난 10일에는 김근태 전 의원이 주축인 재야그룹 모임이 같은 주장을 했다. 이들은 현 지도부가 전당대회를 위해 당 체제 정비를 하면서 계파별 지분 나눠먹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열기 위해 각 지역 위원장 선출 작업과 대의원 명부 작성 등의 체제 정비 작업이 한창인데 손 대표와 박상천 공동대표 등 당권을 쥔 인사들이 지분 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7대 국회와 비교해 초라하고, 집권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에서 차지해야 할 '권력'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손 대표에게 쏟아지는 지금의 비판은 결국 손 대표가 다 쓰러진 집에서 본인이 살자고 먹을 것을 챙기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3일엔 결국 수모를 당해야 했다. 손 대표가 주재한 이날 회의는 지역위원장 선정에 불만을 품은 일부 당원들이 회의장에 난입하면서 회의가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손 대표를 비난하는 욕설이 쏟아졌고 일부 당원들은 "한나라당에서 그렇게 배웠느냐" "한나라당 2중대냐" 등 원색적인 발언까지 퍼부었다. 과격한 당원들은 회의장 문을 걷어찼고 플래카드를 잡아뜯었다. 지난 4·9총선에서 손 대표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유승희 의원은 서울 성북갑 지역위원장 신청을 했는데 "당 기여도에서 최하점수를 받았다"며 재심을 요청했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도부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학규만의 정치색'을 분명히 하기 위해 손 대표는 지난해 3월 갖은 비난을 받으면서 까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점차 본인의 정치색을 잃어버리고, 체면까지 구기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정치행보로는 2012년 2월 25일에도 차기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며 "그 자리 내가 가고 싶은 자리인데…"라며 한숨을 쉬어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