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민주당 몰골이 참 초라하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자랑할 확실한 아젠다가 있었는데 지금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시절이 없다"통합민주당의 전·현직 의원이 본 자당의 현주소다. 7월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이 '정체성'을 두고 한 바탕 논란을 벌일 태세다.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잠시 수면 아래 묻혀있던 '정체성' 문제는 최근 장외투쟁을 두고 당내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표출되는 양상이다.
김근태 전 의원이 주도하며 당내 재야 그룹과 개혁 성향 의원들이 포진한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는 10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의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현 손학규 대표 체제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부터 '신당 창당' 목소리까지 나왔다. 낙선한 김근태 우원식 이목희 전 의원 등과 최근 손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한 문학진 의원, 장영달 최규성 의원 등도 참석한 이날 토론회에선 자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장영달 의원은 "민주당이 야당으로 있는데 민주당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있다"며 토론 시작부터 '정체성' 문제를 언급했고 바통을 받은 최규성 의원은 "나도 제도권에 들어와 있지만 지금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시절이 없다"고 자성했다. 6·4 재·보궐 선거 선전에 대해서도 사회를 본 우원식 전 의원은 "민주당이 당선 된 게 아닌 것 같다. 국민이 한나라당을 이긴 것이지,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이긴 것은 아니다"고 저평가했다. 이목희 전 의원은 "촛불집회 국면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선전하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자당의 현주소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평한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결국 극단적이었다. 이 전 의원은 현 지도부의 총사퇴와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연기를 요구했고 당의 대혁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른 결단을 해 볼 수도 있다"면서 '신당 창당'까지 시사했다. 이 전 의원은 "(민주당이) 촛불집회에 가면 '왜 왔느냐' '뭣하러 왔느냐'고 한다"면서 "이게 몇개의 잘못된 요인을 바꾸면 달라지는 것이라면 지지도가 좀 달라져야 하는데 10%대 중후반의 지지율이 그대로 간다"고 지적한 뒤 "결국 구조적인 문제로 민주당의 혁신이 없이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이 전 의원은 원인 중 하나로 지난 4·9 총선 공천을 꼽았다. 그는 특히 "전국구(비례대표) 공천은 나도 모르는 사람을 공천했다. 비례대표의는 지역선거에 도움이 돼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천이었다"며 "뭐 이런 일이 다 있느냐"고 따졌다. 그는 손 대표가 제시한 '제3의 길' '새로운 진보'라는 당의 진로에 대해서도 "답답하다. 지금의 영국 노동당은 옛날 열우당 보다 더 진보적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별성이 뭐냐"고 소리친 뒤 "정체성을 잃어버린 당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이 전 의원은 "진보개혁적 리더십을 갖춘 새 지도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개혁'이란 깃발을 다시 들어 정체성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지지 세력을 재결집 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 전 의원은 "지금 민주당의 원내 의원 구성으로 볼때는 매우 어렵다"고 진단했다. "81명 의원 구성을 보면 혼신의 노력을 다해도 끊임없이 우경화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이 전 의원은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해 진보개혁정치포럼 등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런 노력을 지속해도 민주당이 갈길을 못 간다면 그때가서 다른 결단을 해 볼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전당대회 연기를 요구했고 "이 지도부가 계속가야 하나.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 지도부는 책임져야 하고 비상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참석자 대다수가 자당의 현주소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이 전 의원의 이런 해법에는 제동도 걸렸다. 한 참석자는 이 전 의원에게 "숫자가 많을때도 그런 것을 못했는데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서 그런 소리하면 국민들은 '됐다'고 할 것 같다. 떨어지고 나서 또 '(개혁세력) 모이자' 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지적에 이 전 의원은 "원내 의석이 많을 때는 뭐하다 지금와서 그러느냐는 지적은 옳은 말"이라고 수긍하면서도 "지금 참담했던 열우당과 대통합민주신당 때 보다 당 처지가 더 어렵다. 아까 말한 것 처럼 (몇가지 문제만) 바꿔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위기감에서 다른 방향을 잡고 가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분위기를 보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도 처리 못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김근태 전 의원은 언급을 자제했다. 사회자가 맨 먼저 인사말을 요구했으나 김 전 의원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더 반성하겠습니다"라고만 했고 주변에서 "뒤에 마이크 있습니다"라며 재차 발언을 요구했지만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은 2시간 넘게 진행된 토론회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