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의 사표 제출로 청와대가 어수선하다. 이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던 박 비서관의 사퇴는 곧 '이명박 청와대 2기 출범'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박 비서관이 9일 용퇴를 결심한 데는 이 대통령의 또다른 '복심'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압박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청와대 내부에서는 '착잡한' 분위기가 흐른다. 박 비서관은 기획조정실 직원들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은 '양 날개'로 역할하며 손발을 맞춰왔다. 박 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으로 12년간 일하다 2002년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뒤 서울시 정무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국무총리실 근무 이후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하고 야인 생활을 하던 정 의원도 같은 해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영입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주력했다.

    시장 퇴임 후 이 대통령의 대선 전초기지로 마련된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에서 보인 두 콤비의 활약은 대단했다. 당시 고건 전 국무총리와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대선 지지율 3위였던 이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필하며 충성심을 발휘했다. 박 비서관은 야전사령관으로 각 지역현장을 돌며 전무하다시피 하던 조직 기반을 다졌고,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일한 '배지'로서 원내와 언론을 상대로 숨가쁘게 달렸다. 지난 2006년 8월 이 대통령이 야심차게 선보였던 '파워코리아 미래비전을 위한 정책 탐사' 현장에도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은 함께 있었으며, 그 후 약 2개월만에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이 대통령은 단 한차례도 선두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대세론을 굳혀갔다.

    박·정, 6년간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한솥밥…두 '복심'

    이같은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 곧바로 정 의원을 주축으로 인수위 인선이 진행됐지만, 금년 초 내각 인선 과정에서는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투입되면서 정 의원은 실무 작업에서 제외됐다. "정 의원이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정 의원은 박 비서관이 자신을 배제시켰다는 오해를 가졌을 법도 하다. 원칙에 충실한 박 비서관과 개성을 중시하는 정 의원의 업무 스타일도 간혹 충돌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 출범 후 두 사람의 길은 갈렸다. 박 비서관은 대구에서 18대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지만 이 대통령의 만류로 청와대에 머물렀다. 이 대통령은 "나를 지켜달라"며 갓 태어난 정부를 함께 책임지자고 박 비서관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명 만화가 이현세씨가 캐리커쳐를 그려줄 정도로 지역구 출마 준비를 해왔던 박 비서관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고 '핵심 중 핵심'이라는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았다. 정 의원은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 고지를 밟으며 그만큼 정치적 역량을 키웠지만 여권 핵심부와 멀어진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측근들 "차라리 박 비서관이 총선에 출마했었더라면…" 아쉬움도

    4.9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55인의 후보자가 이상득 의원 불출마를 요구한 '친이의 난'을 겪으며 두 인사의 갈등은 증폭됐다. 정 의원 주도로 이뤄진 일로 알려지면서 박 비서관은 "어려운 때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이 대통령을 향해 공격해서 되겠나. 이 대통령 보고 사과하라는 거냐"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남경필 의원 등 당내 소장파 의원들은 내각 인선 파동 책임을 강력히 제기하며 청와대를 압박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은 "다 같은 편인데"라며 "걱정말라"고 입모으며 외부적으로 불화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박 비서관을 인사 실패 '4인방'으로 지목하면서 "이간질과 음해, 모략의 명수"라며 직격했고, 여기에 박 비서관이 "인격살인, 비열한 짓"이라고 맞대응하면서 극단의 결과를 낳게 됐다.

    박 비서관의 사퇴에 아쉬움을 표하는 여권 관계자도 많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 의원이 너무한 면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대선 과정이나 인수위 구성에서 정 의원도 잘못이 있지 않느냐"며 "새 정부가 겪었던 시행 착오의 책임에서 정 의원이 마치 무관한 듯 청와대만 공격하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은 모두 이 대통령이 중용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며 새 정부에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현 상황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과거로 돌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