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금의 대규모 사태를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한 가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오늘의 현상을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복잡계(系)'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과 '그의 남자들'이 싫다"고 하는 공통점이다. 그리고 비록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한국 비(非)좌파 진영의 정치적 문화적 콘텐츠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와 비(非)좌파 진영의 얕은 인프라를 간파했기에 불만군중은 이제는 그 '속빈 강정'의 취약성을 얕잡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 결과는 "구(舊)좌파로는 안 된다"고 한 민심의 표현이었다. 그 민심에는 지금 태평로 거리를 메우고 있는 청소년들, 젊은 주부들, 40대, 자영업자들의 일부도 아마 가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좌파를 몰아낸 이후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의 실착(失着)과 보수 정파들의 그간의 행태를 지켜 본 그들은 "당신들 겨우 이거냐?"고 만만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지털시대 인터넷의 괴력은 그 분위기를 '신판 유목민 군단(軍團)'으로 일거에 동원해 버렸다. 이 현상을 그래서 아날로그시대의 산업화 세대, 아날로그시대의 구좌파로서는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 구좌파 역시 열심히 선동을 해대고 대열에 파고들고 있으나, 이 '복잡계'의 유일하고도 획일적인 통제탑 노릇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비좌파 진영의 얕은 인프라―그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양자 다 정권만 잡으면 나라 전체를 단번에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가란 강제력만으로는 지탱되지 않는다. 국가에 불가결한 것은 강제력 이외에 문화적 헤게모니다. 중·고등학교, 대학, 연극영화관, 서점(書店), 대중매체, 포털, 전시(展示)장, 광고물, 무가지(無價紙), 교회, 사찰, 여성계, 매장(賣場)…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않고서는 청와대와 여의도를 제아무리 거머쥐었어도 그건 말짱 껍데기다. 이 점을 충분히 알았다면 이명박 정부는 정권을 마치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쟁취했다는 양 그렇게 인선을 하고 그렇게 '나홀로'로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좌파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막강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그렇게 후닥닥 빼앗겼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라고 말한 박근혜 진영도 '이명박의 진정성'을 아직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6·25 이래의 전통 보수도 '이명박의 실용주의'를 이념적 정체성의 혼란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지난 5년의 역관계를 자기들이 뒤집어 놓았다고 자부하는 순수 뉴라이트도 몇몇 사람에게 금배지 달아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그간의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도 행사장에 제자리 하나 지정받지 못한 처지에 대해 고까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권 실세 내부에도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무너졌던 반대파의 재기, 지지층이었던 '중도'의 이탈 그리고 그의 동맹군이 될 수 있었던 세력의 이반이라는 3중고에 빠져 있다.

    일단 세(勢)를 자각한 '유목민 군단'이 내각과 비서진을 교체한다 해서 금세 가라앉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구호는 이미 '쇠고기'에서 '이명박 아웃'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국면에 어떻게 대처하겠는지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어떤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틸라(5세기 전반 로마를 침공하려 했던 훈족의 왕)의 진군을 만류한 로마교황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시점에선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 쇠고기 정책에는 대안이 있을 수 있지만 정권 퇴진 요구에는 간단히 처리할 수 없는 부비트랩이 깔려있는 것 아닌가"라고.

    '무한 폭발'은 당사자들도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총체적 불능화로 치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도 존중하고 아울러 군중들의 합당한 요구도 수용할 수 있는 차선책을 피차 찾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