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 사설 '대통령은 싫은 일도 국가 위해선 해야 하는 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새 정부의 정부조직개편 법안에) 서명하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새 대통령이 서명·공포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떠나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국회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도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명·공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법상 대통령이 국회 통과 법안을 받아 15일 내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법안은 법률로서 자동 확정된다. 그러나 국회 일정과 새 대통령 취임까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2월 25일 이전에는 법률로서 발효(發效)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전에 개편된 정부조직에 따라 장·차관을 확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 작업이 뒤죽박죽이 되게 생겼다. 당장 국회부터가 통과시켜 봤자 공포되지도 않을 법안의 심의에 열성을 보일 리 만무하다. 설령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현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지 않아 당선자는 살아남을 부처 장관만 임명하고 신설 통합 부처 장관을 비워 놓은 채 새 정부를 출범시킬 것인지, 아니면 아예 장관은 임명하지 않고 현재 부처의 차관들만으로 일단 일을 시작할지 결정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 역사에 없는 편법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폐지 대상 부처의 생존 로비, 공무원 감축 문제 등으로 공직 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판이다. 공직 사회의 혼선과 불안도 장기화할 게 뻔하다.

    현직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정상적 출발을 이렇게 가로막을 수는 없다. 대통령의 헌법적 사명을 거스르는 행동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아니다. 대통령으로선 임기 중 애착을 갖고 만든 조직을 없애는 법안에 서명하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개인적 감정일 따름이다. 대통령은 2월 24일 밤 12시까지 국정의 원활한 운영과 진행을 위해서라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 후임 정부가 순조롭게 출항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권 교체기에 공무원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은 퇴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정부 부처나 회사의 과장들도 퇴직이 눈앞에 닥치면 온갖 회한과 섭섭함, 분노가 생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 공인(公人) 된 도리다. 하물며 대통령에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성을 찾고 새 정부가 순리(順理)대로 출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