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 친북당 등 민노당에 쏟아지는 질책과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어떠한 성역도 없이 당의 낡은 요소를 혁신해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대선에서 민주노총이라는 강력한 지원 조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런 기반이 전혀 없던 신생 정당 창조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진 5위에 머물렀던 민주노동당이고 보면, 당을 환골탈태하겠다는 다짐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심상정 위원장의 언급처럼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당과 민주노총당의 이미지를 벗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는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친북당의 굴레로부터 탈피하지 못하는 한 미래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주지하듯이 민주노동당은 크게 사회 평등을 지향하는 PD(People‘s Democracy, 민중민주주의)파와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라는 두 개의 노선이 공존해 왔다. 1980년대 운동권의 양대 산맥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PD파 안에는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을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이 극소수 있지만, 대다수는 서유럽 제도권 좌파인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 좌파들은 1990년대 이후 ‘제3의 길’(영국) ‘신중도 노선’(독일) 등과 같이 보다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한국의 민주노동당 역시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도 PD의 문제의식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인 만큼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NL이다. NL은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해 온 친북 노선이다. 이것이 1980년대 운동권의 주류 노선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과 1990년대 이후 북한 체제의 위기를 계기로 활동가와 대중들의 대거 이탈과 자체 반성 등에 연유하여 NL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주체사상과는 거리를 둔 행보를 보여 왔다.

    문제는, 민주노동당 안팎의 NL이 주체사상을 고수하지는 않더라도 주체사상의 잔영(殘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나친 민족주의에의 매몰이 그것이다. 그것도 북한식 민족주의를 추종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대적이면서도 북한 체제와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내재적 비판’이라는 논리로 합리화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주요 모순인 ‘양극화’ 혹은 기층 민중의 빈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는 오로지 ‘통일 운동’이고 ‘반미(反美) 운동’만 있을 뿐이다.

    NL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인가는 다언(多言)을 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의 다수파가 될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한국 특유의 민족주의가 사회 전반에 강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즉, 1900년대 35년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해방 이후에도 분단과 전쟁, 미국과의 특수 관계 등으로 민족주의가 파고들 여지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통일과 반미는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남한에서의 친일 인사들의 대거 등용과 북한 김일성의 전설적인 항일 운동 등 사실(史實)을 접하면서 남한보다는 북한 체제를 더 선호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최대 모순은, 수백 만 인민들을 굶어죽이고 지구상에서 인간적인 권리가 최악의 수준인 북한 김일성-김정일 체제이다. 따라서 이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북한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체제의 모순을 인정하고 개혁과 개방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와 정당들도 이런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동안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행보는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북한 체제를 합리화하고 북한 체제의 현상 유지를 돕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당내에서조차 ‘종북(從北)주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진보는 말 그대로 앞서 나가야 한다. 1930년대식의 낡은 민족주의로는 진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 아니, 봉건왕조보다 더 못한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 체제를 옹호하는 진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변화를 기대한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