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자회견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났다. 총선 공천 갈등,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와 내각 인준을 둘러싼 여야 협력문제 등 당 안팎 현안과 관련해서 그는 '국민·국가·시대정신'이라는 세가지 대의를 선점하며 거침없이 걸림돌 제거에 나섰다.

    14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이 당선자는 '당선자' 신분으로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시간. '원하는 총리상이 있느냐'는 첫 질문을 받은 그는 "대통령상을 물어야지 총리상을 물어서 되겠냐. 총리상을 물으면 총리가 된 것 같지 않나"며 농담해 분위기를 주도했다. 회견에 참석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 등 당직자들과 '노 홀리데이(No Holiday)'를 선언, 연일 막중한 업무에 묻혀있던 인수위 관계자들도 웃었다.

    다소 민감한 질문에도 이 당선자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되받았다. 'BBK특검'과 관련한 입장을 묻자 이 당선자는 "그걸 꼭 물어봐야겠어요"라며 부드럽게 넘긴 뒤 "검찰이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조사를 했다. 이번 특검도 아주 공정하게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며,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론을 냈기 때문에 누구든 따라야 한다.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고 원칙을 내세웠다.

    이 당선자는 정치현안에 관한 물음에는 철저히 명분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당내 총선 공천 갈등의 전면에 나선 상황에서 이 당선자는 "새로운 정부가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안정적 지지를 받는 (의석)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제하면서 "당의 어느 누구도 개인적 이해나 계보의 이해를 떠나 협력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계보정치'라는 표현으로 박 전 대표측의 반발을 일축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또 "국민은 선거를 통해 모든 분야가 변화되기를 원한다. 정치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당안팎의 인적쇄신 요구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또 "공천에 관한 것은 강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공식적으로 다룰 것"이라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강 대표의 "책임없는 사람들은 공천에 관해 말하지 말라"는 일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새 정부 출범 이전인 2월 국회에서 여야의 협력을 이끌 방안을 묻자 이 당선자는 "정부조직 개편안이나 내각 인선 문제는 역사적인 변화의 시대에 제출하는 안이기 때문에 초당적으로 여야가 협력해야한다"면서 "우리가 내는 안이 어느 당의 당리당략이 아니고 국가 미래를 위해 내는 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당선자는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는 대등한 입장에서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라며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시대가 아니라 여야도 새로운 형태, 행정부와 의회도 새로운 형태를 보이는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2월 국회에서 예상되는 '예비야당'의 무조건적 비판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동시에 '국가 미래를 위한'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이 당선자의 여유가 넘쳐났지만, 이를 준비하는 기간에는 '깐깐한 명박씨'의 진면모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회견 시작 15분 전까지 직접 연설문을 수정할 정도로 세밀한 신경을 기울였다. 또 지난 주말에는 테니스 일정도 취소하고 기자회견을 꼼꼼히 챙겼으며, 일요일에는 당선 후 처음으로 소망교회 예배도 빠진 채 인수위원들과 4시간 40분간의 마라톤 회의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