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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 열며'에 이 신문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이 쓴 '준비된 반대론자들 잊지 말아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금 대통령직 인수위에는 이명박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가 넘치고 있습니다.
5년 전 이맘때도 그랬더랬습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이란 책을 서로 돌려 읽으며 나라 경영 5년의 꿈에 부풀었습니다. 정해진 5년을 다 채운 그들이 받는 평가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평가는 그만두고 그들 스스로조차 “언젠가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제대로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보면 좋은 쪽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출발선에 선 이명박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5년 뒤 잘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의 5년을 지켜본 기록자(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입니다)의 입장에서 성공의 길을 딱 부러지게 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는 방법만큼은 훈수할 거리가 제법 됩니다. 그중 하나가 득표율은 실표율보다 적다는 ‘득표율<실표율’의 함수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수학이냐고요.
이명박 당선인의 대선 득표율은 48.7%입니다. 투표율 63%를 감안해 좀 더 냉정하게 유권자 전체로 환산하면 이 득표율은 30.7%(48.7×63.0)로 떨어집니다. 투표 안 한 사람들까지 몽땅 지지하지 않는다고 단순 계산할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이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중 69.3%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투표 안 한 사람 중에도 지지자가 있을 테니 실제론 이 숫자보다는 작겠지요. 어쨌든 이 비율이 갖는 의미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해나갈 선택과 결정에 대해 언제라도 반대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는 수학이 아닙니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5%까지 치솟은 일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득표율의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대통령은 내 편만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너무 많습니다.
효순·미선양 사건이 몰고 온 반미 바람 속에 당선된 노 대통령만 해도 취임 첫해에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이라크 파병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지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일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국가의 이익은 당이나 노사모의 박수보다 더 우선해야 할 가치니까요. 지지자들이 쪼개져 나가는 아픔쯤은 감수해야 합니다.
이쯤 되면 제 얘기의 결론이 눈에 보일 겁니다.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 이명박의 사람들은 48.7%, 더 정확히는 30.7%를 뛰어넘는 국정 운영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은 대선 후보로서의 길보다 훨씬 넓고 험합니다. 이 당선인이 선거 때 내건 ‘실용’에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인 건 이념이나 정치 성향만을 앞세워 편가르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일 것입니다. 과거보다 미래를 보여줘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4일 노 대통령은 CNN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CNN 기자가 대통령 집무실 안에 놓인 희망돼지 저금통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대통령은 이것들을 보며 위안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경계를 삼고자 하는 뜻으로 갖다 놨는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론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희망돼지 저금통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바람의 상징물입니다. 그걸 노 대통령은 ‘부담’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청와대의 한 386 비서관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길과 대통령 노무현의 길이 달랐다는 점을 정권을 잡기 전까지 몰랐었다”고. 참고로 노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득표율은 34.6%(득표율 48.9%a×투표율 70.8%)였더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