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총선 공천 문제가 갈 길 바쁜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발목을 잡았다. 수도권 재선 그룹에서 '공천 물갈이'를 주장한 이후 초선 의원들이 가세하며 통합신당의 최대 쟁점은 '인적 청산'이 됐다.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표 차이로 패퇴하는 수모를 당한 통합신당은 당을 추스를 겨를도, 노선을 재정립할 여유도 없이 자리싸움부터 시작하는 형국이 돼 버렸다. 대선 4개월 뒤 총선이란 정치 시간표상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나 통합신당의 대선 성적표를 감안하면 예상보다 '공천' 문제가 빨리 터진 셈이다.

    여기에 김호진 당 쇄신위원장이 25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쇄신의 핵심은 공천 혁명"이라며 "현역 의원(142명) 중 50여명은 물갈이 돼야 한다"고 밝히며 불을 댕겼다.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신당이 살아남기 위해선 공천 물갈이가 불가피 하다"면서 "공천 혁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제시한 '물갈이 대상'은 ▲시대정신이 낡은 사람 ▲반시대적 행태를 보인사람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인위적으로 특정인을 몰아내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그가 제시한 인적 청산 대상은 인적쇄신을 요구한 초·재선 그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단 노무현 정부에서 당·정·청 및 국회 핵심 요직을 지낸 인물들, 즉 친노 진영이 물갈이의 제1 대상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자칫 잘못할 경우 인적 청산 문제로 당이 재분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선에 완패한 상황에서 당이 이런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당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인적청산 작업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친노 진영은 일단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선 참패 원인이 '노무현 대통령'탓이란 시각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으니 구체적 당 쇄신방안을 본 뒤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당 안팎의 인적청산 요구에 "구체적인 방향을 좀 더 봐야한다. 아직은 (인적청산 대상이 친노 진영이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섣불리 대응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공천 물갈이 주장을 처음 제기한 그룹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 진영이란 점에서 이번 '인적 청산' 요구가 손 전 지사 진영의 당권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손 전 지사 진영이 당의 이미지 제고를 빌미로 정동영계와 친노 진영을 압박해 당권을 쥐려한다는 것이다. 친노 진영이 상황을 지켜보자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친노 진영의 한 관계자는 "물갈이를 한다면 새 인물을 영입해야 하고 영입 대상도 당 안팎에서 공감할 만한 인물이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50여명 이상 물갈이가 되겠느냐"며 "그냥 배제하겠다고 하면 반발만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재선 그룹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25일 당 전면쇄신을 공개 요구한 초선 의원 18명은 현 지도부의 총사퇴는 물론, 당 쇄신위원회 구성도 문제를 삼고있다. 위원회가 계파 안배 형식으로 구성돼 제대로 된 쇄신 작업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정풍 운동'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통합신당 쇄신 작업은 '자리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