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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믄 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팔 걷어붙이고 ‘보·보(保· 保) 논쟁’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욕(老慾), 배신자, 역사의 죄인, 경선 불복, 새치기…’.
한나라당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회창 후보에게 쏟아낸 비난들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선 더한 말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40일 가량만 지나면 대선에 승리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회창 변수’ 때문에 불확실성이 생겨났다. 이회창이 누구인가? 그는 “한나라당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을 손수 만들었고 한나라당 후보로 대선에 두 번이나 출마했던 사람이다. 이번 대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의 아버지”라고 했던 인물이다.
그런 이회창 후보의 출마는 아버지가 무단 가출해 딴살림을 차리겠다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공략해 살림을 불리려 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의 가세(家勢)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격한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비난을 퍼부어도 그의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는 이미 “중간에 빠져나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전장에 임하는 장수는 없다”고 했다. 그의 대선 완주(完走)는 상수에 가깝다. 비난전(戰)만으론 ‘이회창 변수’를 풀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를 비난하는 한나라당 사람들의 모습에도 어색한 구석이 적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인정(人情)에 휘둘리기도 하는가 하면, 당 지도부에서는 “내통하는 사람은 가만 두지 않겠다”는 공개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이럴 바에는 이회창 후보가 던진 문제에 정면 대응하는 게 올바른 해법일 것이다. 그는 지금의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를 보수 진영의 적자(嫡子)로 인정하기에는 “불안하고 불분명하다”고 했다. 물론 이는 탈당과 대선 3수(修)라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군색한 변명에 가깝다. 그러나 당을 떠나는 창업자가 후계자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한 이상, 논쟁을 피할 명분이 없다.
일각에선 자칫 이회창 진영의 전략에 말려들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벌써 한나라당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강한 층이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 ‘이회창식 보수’와 ‘이명박식 보수’는 무엇이 다른지, 또 왜 변화가 필요했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회창 후보는 특히 한나라당의 대북 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 한나라당이 왜 대북(對北) 정책의 좌표를 왼쪽으로 한 클릭 이동하려 했는지를 밝히고,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욕설과 인격 폄하로 가득한 비난전보다 정치사적으로 훨씬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최근 보여준 퇴행적 정치 행태와 정당정치 파괴 행위에 대한 비난은 다른 사람 몫으로 남겨 둬도 충분하다.
5년 전 대선에서 패한 직후, 한나라당은 “시대에 졌다”고 했었다.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는 자기 고백도 줄을 이었었다. 이후 ‘뉴 한나라당’으로 탈바꿈을 시도했고, 당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이명박 후보를 대선후보로 뽑았다. 5년 전의 패장(敗將)이었던 이회창 후보가 다시 등장하면서 “왜 당의 기조(基調)를 바꿨는가”라고 공개 비판하는데, 이에 당당히 맞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퇴행이다.
‘보수 대 보수 논쟁’이 우리 정치에서 보수의 좌표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된다면, 변칙과 반칙, 탈법과 불법, 구태와 퇴행으로 얼룩진 2007년 대선이 남길 몇 안 되는 긍정적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