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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분’이었다. 정계를 떠난 지 4년 10개월 만에 돌아온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날 서울 남대문 단암빌딩에는 이 전 총재의 출마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 취재진만 200여명이 몰렸다. ‘창의 귀환’이 41일 남은 대선 정국에 강력한 핵으로 급부상한 모습이다.
출마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2시까지 이 전 총재의 행보는 철저히 감춰졌다. 기자회견문인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도 직전에야 배포될 정도로 이 전 총재 측은 보완에 신경 썼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대위 관계자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보이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며칠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직접’ 작성했다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엔 자신이 만든 한나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토로하는 말들로 채워졌다. 무소속 출마에 대한 ‘경선 불복’ ‘보수진영 분열’ 등의 비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는 무소속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곧이어 “지금 이 순간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처절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국민에게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데 대해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또 “나는 모든 것을 다 버렸다. 나에게는 정당과 같은 조직의 울타리도 없다. 평생을 지켜왔던 개인적 명예와 자존심조차 다 버렸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며 “짓누르는 이 두려움과 가슴이 찢어지는 번민, 고통을 안고 나는 이 길을 가고자 한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 무너진 이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회견 말미에 한나라당 당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는 듯 잠시 말문을 열지 못하기도 했다.
“저는 오늘 제가 만들었고 총재를 지냈으며 10년 동안 저의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한나라당을 떠납니다. 두 차례의 대선에서 저를 위해 불철주야 뛰면서 헌신했던 동지들을 뒤로하고 떠납니다. 이 처절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로 인해 분노하고 상처받는 당원 동지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동지 여러분의 돌팔매를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동지 여러분, 제가 여러분 곁을 떠나는 것은 풍전등화와 같이 위기에 놓인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이 길 밖에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충정을 이해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리며,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25분간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 전 총재는 참석한 기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다음 국립현충원으로 떠났다. 대선후보로서의 첫 행보인 셈이다. 이 전 총재 측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나는 대로 ‘기다렸다는 듯이’ 전 후원회 사무국장인 김천희씨가 한나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이흥주 특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의 대선행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한편 이 전 총재 사무실이 있는 단암빌딩 앞에서는 이 전 총재 지지자 100여명이 모여 그의 대선출마를 환영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어주십시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이 전 총재의 출마 선언을 축하했다. 한쪽에서는 이 전 총재의 불출마를 촉구하며 단식까지 벌여온 ‘민주연대21’이 이 전 총재의 출마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남대문 시장 상인들과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에 쏠렸다. 단암빌딩을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방송중계차와 기자들, 지지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며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누가 출마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