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2년 1월의 일이다. 중앙일보는 정치인의 이념·노선 분석을 시도했다. 국민은 자신이 선택하는 정치인의 이념 지향성을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좌파나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은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자신의 색깔을 ‘커밍아웃’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부분의 의원들이 설문에 답변했다. 시대가 그만큼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유력 정치인 중 설문에 응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상 당선이 가장 유력시됐다. 여러 채널로 답변을 요청했지만 이 총재는 끝내 거부했다. 여당 예비후보 중 2위를 달리던 노무현 전 의원은 물론 ‘기꺼이’ 답변서를 보내 왔다. 3월과 4월 초 여당 경선에서 ‘노풍(노무현 지지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노 후보의 지지도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이회창 후보를 훌쩍 넘어섰다. 4월 중순 중앙일보는 대선 후보들만을 대상으로 노선 분석을 재시도했다. 이때 유일하게 답변하지 않은 인물은 노무현 후보였다. 이 후보는 ‘기꺼이’ 조사에 응했다.

    몇 달이 지나 9월이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30%대 후반을,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 4강 신화’의 바람을 타고 20%대 초·중반을, 노 후보는 10%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책 검증을 하기 위해 설문을 보냈다. 이번에는 누가 답변하지 않았을까. 1위를 달리던 이 후보였다.

    선두주자는 좀처럼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는다. 누가 추월하지 않는지 곁눈질하면서 페이스를 조절해 1위로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뒤쫓는 2위 주자는 결사적이다.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모험도 불사한다. 그러다 보면 역전 드라마도 일어나는 게 인생사다. 따라 잡혔구나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다. 결승점이 코앞이어서 만회할 시간이 없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지 3주가 지났다. 경선 흥행은 박빙의 승부에다 박근혜 의원의 승복 선언까지 있어서 대성공이었다. 국민의 시선은 일제히 이명박 후보에게 쏠렸다. 그런데 그 시선을 붙잡는 것에 게을렀다. 경선 후 캠프는 의외로 느긋했다. 이 후보는 하루는 한나라당 노선의 문제점과 조직의 비효율성을 제기하는가 하면 다음날엔 “인적 쇄신은 없다”고 했다. 참모들은 ‘1선에서 후퇴한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만들었다.

    경선 후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데 소홀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경쟁 상대였던 박근혜 의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이 후보의 정치력을 보여줄 기회다. 한나라당을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은 그의 권력 다루는 솜씨를 입증할 시험장이다. 대선 캠프의 구성은 그의 인재 풀(pool)과 ‘선구안’, 그리고 용인술(用人術)을 국민에게 과시할 무대다. 선거대책기구를 실무자 위주로 짜는 파격 실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선 100일을 앞두고 이 후보는 ‘무능한 국정실패세력 대(對) 유능한 국가발전 세력의 대결’ ‘잘 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등의 큰 구상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건 마땅히 없다. ‘경제’ 하면 이명박을 떠올릴 정도로 이슈 선점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경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이명박은 이런 사람’이란 것을 아직까지 확실히 각인시키지 못했다. 추석 민심이 두려워 국정감사조차 추석 이후로 미루자면서 정작 추석 모임에서 회자될 소재는 내놓지 않았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그때 가서 내놓겠다고? 괜히 구체적 공약을 미리 내보여 표를 잃을 위험을 자초할 필요 없다고? 범여권이 판세를 뒤집을 시간이 없을 거라고? 그런 생각이라면 빨간 불이 켜진 것으로 봐도 좋다.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금방 위기가 닥친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그게 역대 대선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