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박근혜 후보의 승복 선언은 많은 국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경선 제도가 도입된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승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더욱 그랬다. 마치 그 순간에 경선을 다시 치른다면 박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버지가 민주주의에 진 빚을 딸이 다 갚았다” “이제 박정희의 딸이란 그늘에서 벗어나 정치 지도자 박근혜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가 한 게 뭐 있느냐’는 게 지금까지 그를 공격하던 이들의 물음이었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침몰 일보 직전이던 한나라당을 살려냈다고 하지만, 그건 한나라당 지지자에게는 대단할지 몰라도 국민에겐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전 얼굴에 테러를 당했을 때 당차고 의연한 자세에 사람들이 감탄했지만, 이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품격과 품성에 대한 평가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경선 승복으로 박근혜는 국민에게 분명히 내세울 업적이 생겼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공은 온전히 박근혜의 몫이다.

    경선이 끝난 지 2주일. 그런데도 아무 기미가 없다. “저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를 되풀이하던 이명박 후보의 수락연설도,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젠 잊어버리자”고 했던 박 후보의 승복 연설도 슬슬 잊혀져 가고 있다. 박 후보가 “하루 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몇 날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자”고 하더니 아직 잊어야 할 게 남아서 그러는 것일까. 1.5%포인트로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갈려서 이긴 쪽은 놀란 가슴을, 진 쪽은 안타까움을 다 삭이지 못했기 때문인가. 이명박은 ‘먼저 손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에서, 박근혜는 ‘패자가 어떻게 먼저 도와주겠다고 할 수 있나’하는 심정에서 서로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차라리 그런 이유만이라면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처럼 다소 촌스럽기는 해도 미소 지으며 지켜볼 수는 있다. 지금 그들은 예정된 화해와 화합의 길로 손잡고 가기에 앞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전형적인 권력투쟁과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측은 투항자를 받아들이고 회유 가능자로 분류된 사람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박근혜의 도움 없이 집권하고 싶을 것이다. 박근혜 측 기류는 여러 갈래다. 뭉쳐서 내년 총선의 공천을 약속 받든지, 아니면 아예 ‘딴 살림을 차리자’는 것이다. 당내에서 ‘후보 교체론’을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낙마를 기다리자는 쪽도 있다.

    상대방의 이런 움직임들을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점점 감정은 악화되고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 상황에서 박근혜가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들, 이명박으로부터 총선 공천 약속을 받은들 부질없다. ‘이명박-박근혜 공동정권 수립’ 각서에 서명한다 해도 신뢰가 없다면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두 사람의 제휴와 결별은 엄격히 따지면 한나라당의 문제일 뿐이다. 이명박이 포용력과 정치력을 보여주든 말든, 박근혜가 백의종군하든 몽니를 부리든 이 또한 그들의 문제다. 그래도 1997년과 2002년 대선 경선에서 잇따라 실패한 ‘경선 승복’의 전통을 한국 정치사에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다.

    그래서 박근혜 의원에게 주문하고 싶다. 이명박 후보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먼저 다가서는 용기를 내라고 말이다. 그것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길이며, 아름다운 승복이 결실을 보는 길이다. 더구나 그쪽이 각서 백 번 받는 것보다 정치적 실리도 훨씬 크다. 박 전 대표는 ‘경선 승복’의 첫 사례를 남긴 정치인으로서, 또 그 약속을 앞장서서 지킨 사람으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박근혜를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