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거대 담론의 추억'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금 40, 50대에 이른 한국의 중년층에게 가수 안치환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가 맑고 굵은 음성으로 '광야에서' '지리산'을 노래하면, 중년층의 대다수는 하던 일을 멈추고 20년 전의 비장한 세계로 잠시 들어서지 않을 수 없다. 저항운동에 투신하지 않았던 사람들일지라도 민주화를 향한 시대의 신경통을 공유했고, 먼발치에서라도 6.10 시민항쟁의 그 치열한 행렬을 성원했을 것이다. 안치환의 노래는 파르티잔의 흩어진 대열을 정비하는 진군가였다.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는 이 비장한 가사를 처절하게 부르지 않고는 그 '반역의 시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시절이 거짓말처럼 막을 내리고, 저항의 주역들은 이제 중년이 되었다.

    가수 안치환도 중년이 되었다. 그의 노래에 가슴을 저미는 세대가 아니라 춤을 추는 세대가 태어났다. H.O.T·신화·동방신기가 창조한 랩과 율동의 세계에서 감각을 발산시켜온 청년층이 피맺힌 통한의 노래를 축제의 노래로 반전시키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리산을 '반란의 고향'으로 노래하는 가수는 이제 없다. 가수도 김창완. 심수봉이 아니라, 싸이·보아·수퍼주니어·WS501처럼 어떤 상징기호로 지칭되고, 곧 다른 기호로 대체되기를 예정하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이런 풍경이 아찔했는지, 이른바 386세대에 속한 어떤 기자가 묻는다. '이 시대를 특징 짓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라고. 사실, 이 질문은 6.10항쟁 20돌을 맞아 여러 학술단체가 던진 핵심 화두였고, 정부가 처음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거듭 확인한 그 장엄한 역사적 의미와 맥이 닿아 있다. 말하자면, 청춘을 바친 거대담론은 어디로 갔으며, 그 정신은 살아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진보 성향의 지식인일수록 시대진단은 부정적이고, 증발된 거대담론을 아쉬워한다. '1987년 체제'로 명명된 혁명 열기가 이 시대로 연장되지 않아 민주화가 표류하고 있으며, 따라서 '민중의 분노'를 지피는 급진 프로젝트가 다시금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대담론이 매순간 흘러가는 시간의 의미와 인생의 목표를 규정하던 시대는 가버렸다는 점이다. 황석영, 체 게바라, 코스타 가브리엘, 마르크스와 레닌을 혼합한 거대담론은 6.10 시민항쟁을 잉태한 것으로 생명을 다했다. 마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 기어이 알을 낳고 죽는 연어처럼 말이다.

    올해의 대선 정국에서 이렇다할 정치적 화두가 형성되지 않은 것, 후보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시민항쟁의 정신을 거론해도 반향이 없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2002년을 달구던 정치적 쟁점은 시들해졌다. 그것은 6.10항쟁이 생체에 인화되지 않은 20, 30대의 청년세대가 유권자의 45%를 점하고 있다는 인구학적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매혹의 대상을 찾아 자유로이 비상하는 청년층의 생존방식 때문도 아니다. 현기증이 날 만큼 다양해진 취향 감각 정서를 담아내고, 빠른 속도로 분화하는 사회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거대담론은 없으며, 더 불어날 미래세대를 하나의 일관된 이론과 사상의 울타리에 가둬두기란 불가능하다.

    어둠의 70년대를 보낸 사람들, 거대담론을 바이블처럼 품에 감추고 반역의 80년대를 뚫고 온 사람들이라면 프랑스 68혁명의 기수였던 앙리 레비를 기억할 것이다. 그가 최근 미국을 탐사하고 여행기를 썼다. 사막 위의 도시, 뉴욕의 빌딩 숲, 화려한 쇼핑센터, 끝없이 이어진 도로, 인종차별을 숨긴 각양각색의 마을들, 사업가로부터 종교인과 은둔자들로 이뤄진 세계는 어떤 이념의 적용도 거부하는 듯했다. 미국은 이 세기적 저항의 철학자에게는 현기증 그 자체였다. '아메리칸 버티고'(미국 현기증)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레닌과 마르크스, 마오쩌둥의 사상에 뛰어들었던 고등사범학교의 철학도가 밋밋하기 짝이 없는 토크빌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숱한 무의미한 이념논쟁들로 세월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토크빌, 그는 실생활 영역에서 미래비전을 캤던 사회학자였다. 시대와의 불화를 재촉했던 안치환의 노래는 이제 중년층에게는 거대담론과의 이별가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