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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지구촌은 점차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에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급증과 새로운 유전 개발에 대한 투자 부진으로 인한 공급 능력 감소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미국 에너지정보국이 '석유생산피크(peak)' 시점을 2026년 정도로 예상할 만큼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어감에 따라 향후에도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은 결코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한때 잠잠했던 자원 부국들의 자원민족주의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등 남미 좌파정부들이 자원 국유화를 선언한데 이어 러시아도 석유, 가스 자원의 정치 무기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OPEC도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하게 경고하면서 석유 생산 감축 가능성을 시사하여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 7위의 석유 소비국, 10위의 에너지 소비국인 우리에게 에너지 자원 확보는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에너지 공급의 96.5%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는 국가의 사활을 결정할 만큼 중차대한 문제이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원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2에 육박하고 있고 에너지 자원 수입액은 국가 전체 수입액의 4분의 1에 이르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정유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6.7% 수준이지만 원유 개발 산업은 0.1% 미만으로 불균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의 핵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에너지 자원의 자립적 확보 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자립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선진국 진입은 물론 국가의 생존과 발전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은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첫째 에너지 자원 도입선의 다변화가 시급하다.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의 9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중동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원 확보에 가장 심각한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민감한 국제정치적 요인에 따른 중동 정세의 불안과 자원민족주의 정서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적 요인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에 결정적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에너지 자원 도입선을 중동 위주에서 중앙아시아, 러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로 다변화시켜야 한다.
그 중에서도 전략적 입장에서 볼 때 중앙아시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냉전 종식과 더불어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하게 부상되는 지역의 하나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에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이 매장되어 있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며 2010년경에는 세계 수요의 25%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에너지 안보 차원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석유 메이저 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에너지 자원 개발 사업을 선택이 아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는 해외 석유 개발 사업을 에너지 정책의 핵심 전략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가 원유의 자체 개발을 통해 도입하는 비율인 원유 자주개발률(원유 자급률)이 4.1%에 불과하다는 것은 선진국 중 상당수가 5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다.
미국과 영국에 비해 뒤늦게 해외 석유 개발에 뛰어든 프랑스도 이를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시켜 원유 자급률이 93%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인구와 경제 규모 등 제반 여건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이탈리아, 스페인이 석유파동 직후 해외 석유 개발에 주력한 결과 원유 자급률이 각각 51%와 56%에 이르고 있는 것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자원 빈국임에도 불구하고 생존전략 차원에서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해외 석유 개발 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한 결과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원유 자급률의 향상을 위해 석유 개발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메이저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석유 개발 사업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사업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금, 조직, 기술력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조직 확충, 재정 확보, 관료 양성과 같은 배려와 석유 개발 사업을 주도할 기술 인력 양성과 같은 지원을 통해 석유 개발 기업의 해외 석유 개발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
셋째 대체 에너지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세계는 석유 자원의 고갈과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 오염을 의식해 대체 에너지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메탄수화물과 같은 해저자원과 미국과 브라질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바이오 연료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 대체 에너지는 환경 친화성이 높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나 아직 기술, 비용, 효과 측면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메탄수화물의 경우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다량이 매장되어 있으나 경제성 측면에서 상업 생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또한 바이오 연료는 곡물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로서 환경 친화성과 비고갈성을 겸비한 이상적인 에너지이기는 하지만 경작지 확보를 위한 산림자원의 황폐라는 또 다른 환경 파괴와 식량자원의 감소에 따른 세계적인 기아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에너지 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들 대체 에너지는 앞으로 극복해야 할 많은 기술적, 사회적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물론 미래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볼 때 우리에게도 대체 에너지 개발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세계적으로 에너지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확보 문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안보 차원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남북 대치, 동북아 영향력 경쟁,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이라는 주변 정세와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선진국 진입이라는 목표에 비추어 볼 때 국가전략 차원의 에너지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 21세기 동북아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우리의 전략을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