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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로 인해 온 세계가 경악하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당사자인 대한민국만 조용하다. 과거 민주화를 외쳤던 그 많던 인권단체와 인사들은 다 어디가 있는가 한국만 세계와 반대로 가고 있으니 애처로운 마음마져 든다"-고(故)남재중-
10일은 6월 민주화 항쟁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6월 한달, 민주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토론회와 행사들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인권 운동가와 탈북자들 사이에서 한 사람의 추모행사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는 바로 고 남재중 박사다.
남재중 박사를 기억하십니까?
북한인권운동의 선구자 남 박사가 우리 곁을 떠난지 벌써 2년(사망일 2005년 6월 6일)이 됐다. 이에 피랍탈북인권연대(대표 도희윤)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 등 북한 관련 인권 단체들은 남 박사 추모주간(4일~10일)을 선포하고 고인을 국민에게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
고 남 박사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개업한 이비인후과 의사였다. 그는 1984년 우연한 기회에 탈북동포들의 참상을 접한 뒤 가사를 전폐하다시피 하고 탈북자 지원 및 북한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왔다. 그리고 1998년 잠시 귀국했을때 '북한 여성이 중국에서 50달러에 팔려 다닌다'는 소식을 접하고 북한 인권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 이듬해 재미동포를 규합, 국제 난민 인권 운동 단체인 이지스(AEGIS) 재단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남 박사는 2004년 미국 상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 초안을 작성했으며 탈북자의 인권실상을 알리는 데 주력하면서 직접 의약품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고, 워싱턴 포스트지에 처음으로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 기사가 실리도록 노력하기도 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미국방문을 주선하기도 했던 그는 북한의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 발표한 `6ㆍ15시대의 민족반역자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북한 인권 운동 뒤에는 언제나 남재중 박사가 있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김상현 이사장은 "미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됐을 때나 세계 언론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깊게 다루기 시작했을 당시 그 뒤에는 언제나 열심히 뛰고 있는 남 박사가 있었다. 그는 북한 통포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힘을 쏟은 사람"이라고 그를 회상한다.북한민주화네트워크 한기홍 대표는 "서울에 올때마다 북한인권단체들은 방문해 격려하고 젊은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당부하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 김상철 본부장은 "그는 남들이 앞에서 북한인권을 위해 뛸 때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을 하면서 실질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북한동포의 해방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먼저 하늘나라로 간 의인"이라고 그를 증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