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14개월 동안의 밀고 당기는 대장정 끝에 4월 2일 타결되었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하는 한미 FTA 협정이 양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EU와 NAFTA에 이어 세계 3위의 경제권이 탄생하게 된다. 이는 세계 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켜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행태에 식상을 느껴온 대다수 국민들도 한미 FTA 협상 타결을 환영하고 있다. 한미 FTA는 우리에게 가져다 줄 새로운 경제적 기회와 함께 붕괴 직전에 처한 한미 안보동맹의 회복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우리는 양국 정부간 협정 체결과 국회의 비준에 만전을 기울여 한미 FTA가 우리의 국가이익을 위해 소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전개되고 있는 국내 상황 전개는 커다란 의혹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노대통령이 한미 FTA 협상 타결에 주력한 이유가 대선용 카드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첫째 한나라당을 코너에 몰아넣기 위한 속셈으로 보인다. 이번 한미 FTA 협상 타결은 양국 정부간 협상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것이지 한미 FTA 협정이 공식적으로 발효된 것이 아니다. 한미 FTA 협정이 발효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그것은 양국 정부간 협정 체결과 양국 의회의 비준 절차이다. 그 중에서도 어려운 일은 양국 의회의 비준을 얻는 일이다. 양국은 공히 2007년,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간 첨예한 대치 상태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양원의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친여 정당들이 한미 FTA 협상 타결에 찬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 협정은 한나라당의 도움 없이는 국회의 비준을 얻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한미 FTA 협정을 책임지고 비준해 줄 정당이 부재하다는 비판적인 논리와 함께 한나라당이 한미 FTA 협정의 비준에 앞장서도록 부추키려는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 한미 FTA는 노대통령이 책임지고 추진한 것이기 때문에 노대통령이 책임지고 국회의 비준을 얻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의 역할을 부추키려는 의도는 한미 FTA 협정 비준이 순탄치 않을 경우 그 책임을 한나라당에 뒤집어씌우려는 의도이다.

    둘째 대선 과정에서 좌파의 대단결을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앞으로 가열될 한미 FTA 협정 비준 반대 운동의 과녁은 협상을 책임지고 추진한 노대통령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 한나라당이 될 것이 뻔하다. 한미 FTA 반대 세력은 격렬한 한미 FTA 협정 비준 반대와 반미 선동을 통해 한나라당을 '친미 앞잡이'로 몰아붙이려 할 것이다.

    노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반한나라당·친북반미 세력의 단결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로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한미 FTA 반대 세력의 폭동과 소요를 방관하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노대통령과 중도 내지 우파의 모자를 쓰고 등장하게 될 좌파 후보는 사회 분위기와 여론 동향에 따라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적절히 조정해 나가면서 역으로 사회 분위기와 여론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셋째 중도(中道) 입장의 유권자들을 한나라당 지지로부터 분리해 내기 위한 속셈으로 보인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10% 이상이 늘어났다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에서 노대통령의 정치 행태에 식상하여 중도 입장을 취하고 있던 유권자들이 다시 좌파 후보 지지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으로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나라당이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지지에다 중도세력의 지지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중도세력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친여 좌파 정당들과의 차별성을 단번에 없애버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좌파 후보간의 차별성도 흐려지게 되어 보수표의 분산이 우려된다.

    그러면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우선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까지 한미 FTA에 대한 원칙적인 찬성 입장만을 천명하되 한미 FTA 협정 비준을 위해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한미 FTA는 노대통령의 책임 하에 추진한 것으로 책임정치의 차원에서 이에 대한 국회 비준도 당연히 노대통령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의 용병(傭兵)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노대통령과 여론의 공세가 거세지는 경우 한나라당은 미국 의회의 NAFTA 비준 선례를 참고하여 제18대 국회가 개원된 이후에 새로운 대통령의 책임 하에 새로운 국회가 비준하도록 하자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2008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도 의회 표결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결코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한칠레 FTA 협정의 국회 비준에도 17개월이 소요되었던 전례도 있다.

    한미 FTA 협상 타결로 한나라당이 경제 분야에서의 중요한 이슈를 빼앗긴 가운데 북한 핵문제에 대한 2·13 합의에 따라 북미 접근과 남북정상회담 추진설 등으로 한나라당의 입지는 더욱 축소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한미 FTA 반대 선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정권 탈환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