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명의 한나라당 의원 중 절반 이상은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관리형'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현 지도부가 중심을 잡기 힘들다. 최고지도부 마저도 대선주자간 이해관계에 얽혀 충돌하고 있다. 이대로 경선을 치른다면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란 게 당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래서 중립지대에 속한 의원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맹형규 권영세 임태희 의원 등의 주도로 만들어진 중심모임은 6일 '한나라당 경선 이렇게 하자'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취지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간의 충돌을 줄여 경선후유증을 최소화 하는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강재섭 대표가 5월 당내 선거관리위원회 설치와 후보등록, 후보검증 실시 등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히면서 이날 토론회에서는 '후보검증' '경선방법' 등을 두고 토론이 진행될 것이라 예상됐지만 이같은 주제는 초반에만 잠시 언급됐을 뿐 정작 이날 토론회의 주요쟁점은 바로 '18대 국회의원 공천'이었다.

    발제를 맡은 김형준 교수(명지대) 박명호 교수(동국대)와 토론자로 참석한 정진영 교수(경희대) 임석준 교수(동아대) 모두 18대 공천에 대비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 놔야 의원들의 줄서기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현재 한나라당이 당 중심이 아닌 '박근혜-이명박' 두 후보 중심으로 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도 바로 '18대 공천' 때문으로 봤다. 국회의원들이 특정 대선주자에 줄을 서고 이미 특정캠프에 개입한 의원들이 상대진영에 감정적으로 공격을 쏟는 이유도 공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 2008년 공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전혀 논의되지 않고있다. 그래서 의원들이 불안해 한다. 양 캠프에 줄을 선 의원들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경선에 진 쪽은 공천에서 배제될 있고 이런 당혹감 때문에 경쟁을 할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의원들 스스로가 줄서기를 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절박감이 있다"며 "한나라당이 정권을 갖고와야 한다는 의식보다 '누가 후보가 돼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흔들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각 캠프가 중진잡기에 나서 어느 캠프가 어느 중진을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다. 당 지도부도 솔직히 중립이란 명목 하에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대선후보들이 "공천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한다"며 "공천이 객관적 기준에 의해 만들어지고 어느 후보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전제된다면 이렇게 경선이 치열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대선이 끝나면 내년 2월까지는 공천이 이뤄져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당이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이것을 만들지 않으면 엄청난 후유증이 일어난다"며 "어느 선거든 선거 뒤 2개월간은 후유증이 있으니까 객관적 공천 로드맵을 준비해야한다. 선거를 한달만에 치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박 교수 역시 '18대 공천'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다뤘다. 박 교수는 "가장 절실한 문제가 공천이다. 대선에서 이기든지든 공천개혁은 불가피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새인물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면서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총선인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 교수도 "지역구 의원과 각 지역 당협위원장들도 대선에서 적극적으로 뛰어야 하는데 이번 대선을 치른 뒤 얼마 뒤 총선이 있기 때문에 공천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봐야 하고 대선과 총선을 연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대선이 끝나고 곧바로 공천에 들어가기 보다 공천을 앞당겨라"고 주문했다.

    당협위원장들도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했다. 박종희 당협위원장(경기 수원장안)은 공천권을 갖고 있는 최고위원들의 중립 문제를 지적했다. 박 전 의원은 "줄세우기와 공천제도를 말했는데 현실적 고민이 많다. 최고위원들이 지난번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대선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지만 (당시 최고위원들은) '누구와 친하다' '누가 도와주고 있다'면서 당선됐다"며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최고위원밖에 없는데 공천권을 가진 최고위원들이 특정주자의 참모 역할을 하는게 맞느냐"고 따졌다. 그는 이어 "그런 것을 지적해야할 사람이 당에서는 최고위원밖에 없는데 그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럼 당신은 누구 편 아니냐' 이렇게 나온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최고위원들 중에는)당 캠프에 가서 도와주는 분도 있고 약간 중립을 지키며 뒤로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서장은 당협위원장(서울 동작갑)도 "대선후보가 된 사람이 자기 의중을 반영시킬 수 있는 사람을 넣을 게 아니냐"며 18대 공천에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정 교수는 "당이 중심을 잡으려면 공천문제는 빨리 제도화 돼야 한다. 대선과 총선 사이 기간이 짧기 때문에 공천이 불확실하다면 당내 정치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의원들이 어느 캠프에 가 있든 대선승리를 목표로 뛰어야 하는데 (자신의 활동이 공천에)인센티브가 없다면 활동하기 힘들 것 같다"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지만 깊이 생각해 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