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에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 전공)이 쓴 'DJ와 영웅의 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 역사는 큰 인물을 키우는 데 인색했다. 왕조 시절 의심 많고 무능한 권력자들은 '잘난 사람' 꼴을 보지 않으려 했다. 재능과 패기가 넘치거나 완력이 센 청년들은 질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소문난 소년장사는 제 명에 죽기 어려웠던 것이다.

    약관 20대에 병조판서를 지낸 남이 장군은 당쟁의 와중에 호기가 넘치는 시 한 구절을 빌미로 죽음을 당했다. 황진이의 묘에 시를 바친 당대의 호남(好男) 백호 임제는 좁아터진 반도 안에서 서로 물어뜯는 세태가 부끄럽다며 후손들에게 자신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했다. 만약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장렬한 전사를 하지 않았다면 속 좁은 군주였던 선조의 시기와 정적들의 음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큰 인물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은 왕이나 독재자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되풀이된다. 지역이나 출신이 다르거나 이념과 정파가 상이할 때 객관적으로 걸출한 지도자의 뛰어남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역사적 업적을 간과하고 부정적 측면을 부풀려 비난한다. 이때 위인들의 위선적인 사생활이나 개인적 비리가 빌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평은 독일 철학자 헤겔에게서 발견된다. '역사철학'에서 헤겔은 "하인에게 영웅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주석이 더 걸작이다. '그 이유는 영웅이 영웅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하인이 하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호걸도 사람인지라 무수한 결함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지근거리에서 시시콜콜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하인의 눈에는 영웅도 자기와 다를 바 없는 유치한 인간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이 큰 인물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위선이나 비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의 근본 의미나 법칙을 묻는 역사철학적 구도로 볼 때 시대의 큰 흐름을 포착하고 통치의 결과나 정책으로 구현해 역사의 행로를 앞당기는 인물을 영웅 또는 '세계사적 개인'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대표적 사례는 나폴레옹이다. 비록 그가 하늘을 찌르는 권력욕과 개인적 열정에 의해 움직였지만 치세의 결과 유럽의 반동적 구체제가 해체되고 근대 국민국가체제로의 진입이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걸맞지 않은 영웅사관이라는 비판을 받겠지만 이런 시각을 빌려오면 우리 현대사의 대표적인 두 영웅, 또는 '한국사적 개인'은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다. 산업화의 시대정신을 형상화한 지도자가 박정희이며 민주화의 가치를 표상한 인물이 DJ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정희의 철권통치와 개발독재, 그리고 말년의 사생활을 아무리 혐오한다 해도 객관적으로 남겨진 역사의 성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여러 인간적 결함이 있겠지만 DJ는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임이 분명하다. 온갖 비판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던 경제개발을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인 박정희처럼, 갖은 탄압을 무릅쓴 채 민주화를 외치고 햇볕정책의 모태인 '4대국 한반도 전쟁억제 방안'을 이미 한 세대 전부터 주창한 DJ의 선견지명과 일관성은 평가받아야 한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시대를 선취해 역사 속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적 개인'인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영웅의 최후는 '화려한 꽃이 져 쓸쓸하게 나뒹구는 것같이' 비참하다.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한 채 고도(孤島)에서 삶을 마감한 나폴레옹과, 부인도 암살당하고 믿었던 부하의 총에 비명에 간 박정희를 보라. 이에 비해 DJ의 말년은 행복하다. 대권을 잡았으며 노벨상도 받았고 한반도 주변 정세의 흐름은 일단 그의 경륜을 입증하는 듯하다. 그러나 차남 김홍업씨의 보궐선거 출마는 우리 역사에서 드문 영웅의 길을 가고 있는 DJ의 마무리 여정을 훼손한다. 역사를 생각하는 DJ의 재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