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김혜준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이 쓴 '죽은 교과서로 공부하는 중·고교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바로 옆에 살기 때문에 해마다 이맘때면 학생회장 선거 유세를 하는 아이들 고함소리를 들으면서 봄을 느끼고 있다. 새로운 회장선거,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교실 그리고 새로운 교과서 등 봄학기는 아이들에게 온통 새로운 시작이다. 이런 아이들의 하얀 도화지같은 새출발을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세심하고 신중하게 배려하고 있을까.

    자유주의연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검정을 받은 2007년도판 중학교 및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 학년에 걸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원리’ ‘북한의 실상’ ‘세계화’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적인 내용이 기술돼 있었다.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은 이미 지적된 바 있지만 사회 교과서마저도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가운데 상당수는 시장 개방을 부정적으로 보기 쉬울 것 같다. “선생님: 만약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나라가 이런 사항을 어기면 강한 무역 보복 조치가 행해지거든. 무역에서 국가의 보호를 줄이고 가격과 품질로 경쟁해서 살아남으라는 거야. / 학생: 선진국들에만 유리한 결정이로군요. 그럼 우리도 달리 살길을 찾아봐야겠네요.”(동화사, 중1, p.102)

    또 적잖은 중2 학생은 이미 역사적 실패로 판명난 사회주의 혁명을 동경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쑨원―인류의 위대한 희망이 탄생했는데, 이 희망은 러시아혁명이다. 네루―인류 사회를 눈부시게 진전시키고, 꺼지지 않는 불꽃을 점화했다. 나세르―러시아혁명은 수억을 헤아리는 사람들을 착취로부터 해방시켰다.”(중앙교육진흥연구소, 중2, p.111) 이 책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긍정적 평가만을 소개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타난 빈곤과 기아, 자유의 억압, 폭력과 학살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시장경제를 삐딱하게 보는 중3 학생들도 나타날 듯하다. ‘사노라면 노래 가사 바꾸기’ “(1절) 공급자는 언제라도 많은 이윤 노리지. 같은 물건 팔다보면 서로 싸움하더라. (2절) 수요자가 많이 오면 가격들은 오른다. 가격을 높게 팔면 많은 이윤 가능해.”(교학사, 중3, p.85)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수요공급 원리를 그저 공급자의 이윤 추구욕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한편 머리 굵어진 고교생들은 공권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해고 근로자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 사건에 대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진상 조사… □□일보 2001.4.27(신문기사). (토론내용 2.) 폭력 진압에 대해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조사해보자”(교학사, 고교, p.207)며 과잉진압만을 토론함으로써 집회시위의 폭력성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또 “‘탈북자들이 겪는 갈등’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은 남한 사람들의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경험한 한 탈북자는 ‘남한 사람은 12시만 되면 하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라고 털어놓았다.”(천재교육, 고교, p.271) 이처럼 북한의 실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탈북자의 입을 통해 소개한다면 나태와 부패가 만연한 북의 실상을 정반대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혹자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가 차지하는 절대적인 위상을 감안한다면 결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교실에서의 모든 논란이 교과서의 토씨 하나로 종결되던 풍경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내신의 중요성 때문에 교과서는 더욱 더 ‘금과옥조’로 인식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은 교과서에 있어 생명과도 같다. 특히 건전한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회 과목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격을 상실한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집필자와 교육 당국의 맹성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