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출마설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나라당이 고민에 빠졌다. 정 전 총장이 수렁에 빠진 범여권을 다시 끌어올리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5·31지방선거 이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충청여론의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 고위관계자는 "정운찬이 나오면 한나라당은 골치 아프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충청여론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지도가 없어 큰 파괴력이 있겠느냐'는 당내 일각의 주장에도 "언론에 정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순간부터 인지도 문제는 해결된 것이고 인지도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근 한나라당이 계속 '정운찬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에서도 이런 고민이 묻어난다. 한나라당은 지난 4일부터 논평과 각종 브리핑, 공개회의를 통해 정 전 총장을 "불쏘시개" "어차피 들러리" "토사구팽" "분위기 메이커" "치어보이" "권력중독자" 등 원색적 용어를 사용하며 강도높게 질타하고 있다.

    특히 정 전 총장이 한나라당 행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친구들이 돌 던 질 것이다. 한나라당은 내 머릿속에 부패한 정당으로 각인돼 있다. 거기로는 못간다"고 답하자 유기준 대변인은 8일 논평을 통해 "대선주자로서 나서기도 전에 마타도어부터 하는 것을 보면 나쁜 정치부터 배운 모양"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 정 전 총장이 얼마나 깨끗한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경고했다.

    9일에도 정 전 총장은 한나라당의 공식회의 테이블에 올랐다. 홍보기획본부장인 심재철 의원은 "정운찬 교수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어제 김한길 의원이 영입을 제의했다고 하고 정 교수는 며칠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는데 학자의 길은 학문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학문적인 진리는 진실이냐 거짓이냐 둘 중 하나다. 그러나 정치인의 길은 다르다"며 "학문적 진리는 꼭 사회적으로 공감하는 명제와 같지 않고 가장 효율적이지도 않다. 학문적 진리와 정치적 진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도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40년 이상의 대부분을 학자로 지내왔던 한국의 지성인이 이 바닥으로 뛰어드는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여권이)경선없이 대선후보로 곧장 모셔간다면 나도 박수쳐 주겠지만 중간에 경선과정을 통해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다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차라리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까지 40년간 학자의 길은 가식적인 것이었다. 나 이제 정치판인 내 길로 돌아가겠다'고 솔직하게 커밍아웃을 하라"며 "그렇지 않다면 제발 정신 좀 차려달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