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전공)가 쓴 '국민과 함께가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이한 회견에서 “국민과 저의 소통이 굉장히 어렵다” “앞으로 국민 앞에서라도 쓴소리 하겠다”고 말했다. 듣는 국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 대통령의 이 말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보고 있노라니, 취임 첫해 가졌던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에 맞상대한 검사들을 ‘검사스럽다’ 하여 비판하면서 대통령을 지지한 당시의 국민이 생각난다.

    그런데 2월27일의 회견은 그렇게 된 원인의 큰 몫이 아직도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에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가장 큰 관심 사항인 국가 안보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반헌법적이고 국민을 답답하게 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북한도 제정신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이라는 가정법을 쓰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김정일의 이익형량 판단에 맡겼다. 그러면서 “갖고 있는 것보다 버리는 게 이익이 크면 버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니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될 수 있다는 신호를 우리는 북한에 줘야 한다면서 그것이 “쌍방 상호관계”라 했다. 이는 김정일의 선의와 시혜에 우리의 안전을 맡기겠다는 허구다.

    현실의 김정일은 자기가 지배하는 독재체제의 백성들이자 우리들과 진정으로 같은 민족인 300만 북한 주민을 아사(餓死)케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천하에 믿을 수 없는 통치자다. 한 사람의 목숨은 전 지구보다도 무겁다는 명제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삼는 민주국가에 있어서도 그 국가의 권력을 행사하는 자에 대해서는 불신에 기초하여 통치의 기본 구조를 짜라는 것이 입헌주의의 기본원리다. 그래야만 왕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대 국가의 기본적 틀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세습의 왕조 독재체제인 김정일의 정권을 믿고 그의 판단에 핵무기 사용을 맡기자는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입헌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

    지난 연말 노 대통령은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 연설에서 군대를 인생 썩히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국민을 미국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는 존재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면서 “바짓가랑이 매달려서 형님 백만 믿겠다, 자주국가의 대통령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했다. 전직 국방장관들과 참모총장들이 사과와 취소를 요구했다. 그에 대한 답이 이런 것이라면 정말로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

    자국의 안보를 걱정하여 이를 지키고자 동맹국의 손마저 빌리고자 하는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어찌하여 김정일의 핵(또는 핵과 유사한 살육의 화학무기들)은 그들의 자위를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지 침략의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선의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영토를 보전하고 국가의 독립과 계속성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를 정한 헌법에 근거하는 권력인 ‘국군통수권’에 반한다. 또한 대통령이 취임에 즈음하여 국민 앞에서 엄숙히 행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한다는 선서에도 반한다.

    자기가 책임을 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날마다 다른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을 하나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가장과 그런 가장을 눈물겹게 바라보는 가족들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하다. 그런 것이 한 나라의 대표자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 지난 정권에 비해서 모자람 없이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자위하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왜 그렇게도 부족한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자기 가족의 안전을 다른 사람의 선의에 맡기려는 그런 행태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