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경제 초점'란에 김종석 홍익대 교수가 쓴 <번지수 잘못 짚은 ‘노정권 실패 논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에 비판적인 재야 진보 진영을 ‘교조적 진보’로 정의하고 달라져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현 정부의 노선을 ‘유연한 진보’로 규정했다. 그러나 유연한 진보든 교조적 진보든, 개혁세력이든 열린우리당이든 거기서 탈당한 사람들이든 국민 눈에는 모두 똑같은 ‘범(汎)여권’ 세력일 뿐이다.
지난 4년간 한국의 국가안보·정치·사회·경제를 뒤흔들고 민심의 이반을 자초한 사람들끼리 내부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일반 국민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자유보다는 평등을, 시장기능보다는 정부기능을, 기업활동보다는 노조활동을, 그리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더 중시했고 이런 노선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어느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노무현 정권은 진보 좌파 정권이다.
그런데 재야 진보 진영에서 현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해서, 현 정권이 진보 좌파 정권이 아니라고 매도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대통령이 기고문에서 ‘사상과 교리’로 국정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현 정권의 초기 이미지는 ‘사상과 교리’로 무장한 혁명가들이었다.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에 대해 너무 이념 편향적이라고 우려했다. ‘코드’라는 생소한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이 정권 사람들이다. 임기 내내 경제정책은 물론 외교안보·교육·부동산 정책에서 전문성보다는 코드가 더 중요시되었다. 현 정권의 시행착오와 실패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현 정권의 실패는 진보적 개혁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바로 능력부족과 시대착오적인 좌파 논리 때문이다. 그런데 재야 진보 세력은 현 정권의 실패는 현 정부가 진보적 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부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그것을 명분으로 탈당하기도 했다. 교조적 진보 노선을 현 정부가 그대로 따랐더라면 현 정권이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런 비현실적인 현실인식에 어이가 없다.
분배와 복지를 내세우면서 서민과 근로자를 위한다고 했던 현 정부 4년 동안 분배는 더 악화되고, 서민과 근로자의 생활은 더 어려워진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과연 노무현 정부가 진보적 개혁을 더 강하게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경제가 침체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서민과 근로자들이다. 경제가 침체되면 분배는 악화되고 민생은 어려워진다. 지난 4년간 한국경제가 침체된 이유는 진보적 개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진보 노선을 걸었기 때문이다.
분배와 복지가 중요하고 서민과 근로자를 위한다고 했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진보적 개혁이 아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진보 개혁 세력의 한계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폐쇄주의와 집단주의, 평등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퇴보를 면치 못했다. 자유와 창의가 넘치고 개방과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사회는 번영을 누렸다. 조선의 멸망과 북한체제의 실패, 대한민국의 성공이 그 증거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 경제질서의 흐름과 역사의 교훈에 진보세력은 너무 어둡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율과 창의가 존중받고, 기강과 효율이 살아 있고, 공짜와 떼쓰기가 용납되지 않는 실용주의적 개방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하거나 아니면 글로벌 추세에서 또다시 낙오되는 길밖에 없다. 이것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든 시장주의라고 하든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정권 4년의 실패한 진보 실험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냉엄한 현실이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는 이념 논쟁은 오른쪽으로 갈 것인지 왼쪽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가게 될지 뒤로 가게 될지를 결정할 국운(國運)이 걸린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