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초반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민족의 통합이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내부적 통합뿐 아니라 남북한이 하나로 연결되는 한반도의 통일을 의미하며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각지에 진출한 한민족 전체가 기능적으로 하나가 되는 한민족의 대통합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2년 설립 이후 54년 동안 존속해온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이하 ‘연변자치주’)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길림성(吉林省) 당국은 연변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이 최근 33%로 떨어진 것을 계기로 연변자치주를 향후 5년 이내에 옌룽투(延龍圖)시로 개편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 당시 연변자치주 전체 인구의 62%를 차지했던 조선족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과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 조선족 노동력이 중국의 타지역 또는 한국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1996년부터 절대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조선족 비율이 2000년 말에는 전체 인구의 38%, 2005년 말에는 33%로 대폭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소수민족 비율이 최소한 30%를 넘어야 한다’는 소수민족 자치주 설치 규정에 따라 연변자치주가 해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연길(延吉)시에서 발행되는 한글 여성지 ‘연변녀성’ 3월호는 “중국의 조선족 수는 2050년에는 50만 여명, 2090년에는 19만 여명으로 줄어들고, 22세기 초반에는 중국에서 조선족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측을 하고 있다.(2006. 3. 11, 조선일보)

    연변자치주가 해체되면 우리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근거지였고 향후 우리 민족의 중요한 활로(活路)가 될 중국 동북지방이 갖는 전략적 이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래와 관련하여 우리가 중국 동북지방을 중시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는 강력한 중국이 한반도에 미칠 과도한 영향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2002년 2월부터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였고, 빈사상태에 빠진 북한에 대해 강력한 접근 정책을 펴고 있다. 동북공정은 시작한지 4년 만에 중국이 연변자치주의 해체를 추진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또한, 중국은 북핵 문제가 불거진 2002년 이후 북한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확대해 왔다. 2004년 중국의 대북 투자액은 5,000만 달러로 북한이 유치한 외자 총액의 85%를 차지하고 있고, 대북 무역액은 14억 달러로 북한 총교역량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2005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의 북한 방문 때는 20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키로 약속하였고 최근에는 중국이 북한 나진항 개발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 이는 향후 한반도에서 돌발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중국의 한반도 개입을 정당화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을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현재 중국은 북핵 문제보다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대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린보(晋林波)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정책국장은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은 우리에게 급하지 않다”고 밝혔으며, 존 타식 미국 해리티지재단 연구원 역시 2월 28일 위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중국은 강력한 통일한국이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만주지방에 대한 통일한국과의 영토분쟁도 우려하고 있다”(2006. 3. 13, 미래한국)고 지적한 점은 이러한 중국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강력해진 중국과 통일한국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할 연변자치주가 해체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미래에 심각한 전략적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 전략적이고 공세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연변자치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동북지방에 대해 거시적인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반도는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향후 통일될 한반도와 동북아를 아우르는 <한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대통합>은 영토와 역사적 차원을 떠나 경제와 문화적 차원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의 연변과 러시아의 연해주는 물론, 미국과 일본에 진출해 있는 교포 사회를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시급히 고려해야 할 점은 연변자치주라는 중국 교포의 공동체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또한 중앙 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러시아 교포들이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 이전의 생활 근거지였던 연해주에 다시 모여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중국은 필자가 1997년 '젊은 보수주의자의 동북아 읽기'라는 책을 통해 연변자치주의 미래를 우려했을 당시부터 이미 연변자치주에서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족 비율을 낮추기 위해 조선족 분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당시 필자가 제시했던 방안이 <한민족의 대통합>과 <한민족 경제권>의 형성이었다.

    필자는 또한 구체적 방안으로 연변자치주에 대한 우리 기업의 투자를 집중시킴으로써 조선족의 분산을 막고 그들의 공동체 사회가 유지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의 경우 50만에 달하는 교포 중에서 일부라도 자치주 형태로 집단 정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연해주에 '고려인지치주'의 설립 추진 필요성도 제시한 바 있다.

    <한민족의 대통합>은 해외 교포들을 한민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면서도 현재 그들이 처한 입장을 존중하는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연변자치주의 해체 가능성과 관련하여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은 중국의 공민(公民)인 조선족이라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중국 정부에도 우리가 연변자치주를 중시하는 이유는 중국에게 소수민족 문제를 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 사회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그들이 중국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결코 폐쇄적 민족주의 입장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한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현대적 의미의 영토와 국력은 이미 과거의 국경 개념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인 경제력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영토회복이나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비과학적이며 과거 지향적인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한반도와 교포 거주국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개방적 민족주의여야 하는 것이다.

    조선족 출신의 중국공산당 연변자치주위원회 선전부의 채영춘(蔡永春) 상무 부부장은 연변자치주가 해체 위기에 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 “대학을 졸업한 조선족이 취업할 만한 직장이 자치주 내에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조선족의 연변자치주 이탈을 무조건 막을 수만은 없는 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두만강 개발사업이 다시 이루어질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므로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이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2006. 3. 11, 조선일보)고 우리의 관심을 촉구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종료하고 또 다른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활로(活路)를 위해 우리 국민과 정부의 각성과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