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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책을 다듬고 박 전 대표의 각종 강연 원고를 준비하는 유승민 의원이 당헌·당규상 6월로 예정된 경선시기를 "늦추자"고 주장했다.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 30% 여론조사 20%의 선출방식 변경에 대해선 "비율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선거인단 규모를 늘리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현 규정은 9개월 동안 57차례의 회의와 공청회를 거치면서 당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데, 몇몇 사람이 바꾸자고 해서 되겠느냐"던 박 전 대표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8일 기자들과 만나 "(유 의원)개인 생각"이라고 했고 유 의원 역시 '사견'이라고 전제했지만 라이벌 주자들과 당내에서는 유 의원의 이런 발언을 박 전 대표의 의중으로 간주한다.
유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최측근이란 점 뿐만 아니라 박 전 대표의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최경환 의원과도 매우 가깝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발언을 단순히 유 의원 사견으로 치부하긴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 측에서도 경선제도와 관련해 말문을 열었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원희룡 의원도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나서는 등 '경선 룰'을 둘러싼 파장은 급속히 확산됐다.
그래서 각 후보진영과 당은 '경선 룰' 논의 자체를 꺼려 하던 박 전 대표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단 당내에서는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박 전 대표측의 시간벌기'를 꼽는다. 20%포인트 이상 차이나는 지지율 격차를 좁힐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 당헌·당규대로 6월 경선을 치르면 경선 시간표상 박 전 대표는 늦어도 3월초까지는 이 전 시장과의 격차를 오차범위 내로 좁혀야 한다.
박 전 대표 측도 3월 초까지는 추격해야 이 전 시장과 '게임 해볼 만 하다'고 말한다. 또 지지율 격차를 좁히려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하락해야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다. 여권 지지층이 이 전 시장에게 흡수됐다는 분석을 하는 박 전 대표측 입장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줄여지려면 여권의 정치지형 변화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권이 지금으로서는 '언제' '어떻게' 분화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의 탈당선언으로 2월 전당대회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인 상황에서 여권의 정계개편 시간표에 맞추려면 박 전 대표의 '3월 역전드라마'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영남의 한 초선 의원도 예측이 힘든 여권의 상황이 이런 박 전 대표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여권의 현 상황이 어떻게든 정리돼야만 지지율도 안정세를 찾을 것이고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지지율 격차도 좁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에선 이런 분석에 일단 손사래를 친다. 박 전 대표 개인의 유·불리때문에 유 의원이 경선시기 변경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 개인 지지율 때문에 경선시기를 늦추자는 것은 누구보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박 전 대표의 의중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는 "경선제도와 관련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6월에 후보를 선출하는 데는 당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당 관계자 역시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해 "여당이 후보를 늦게 낼텐데 우리도 괜히 후보를 6월에 뽑아 일찍부터 여권의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발언은 아닐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