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1997년 필자는 '젊은 보수주의자의 동북아 읽기 - 동북아 변화와 한민족 책략'이라는 우리 민족의 미래 전략서를 저술한 적이 있다. 이 책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나타났던 혼란과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지적하고 동북아에서 우리 민족의 발전과 위상 증대를 위한 필자의 고민과 소박한 전략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같은 해인 1997년 중국에서도 '중국 대전략 - 세계 영도의 청사진(中國大戰略 - 領導世界的藍圖)'이라는 중국의 미래 전략서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중국의 젊은 전략가들이 20년 이후 중국의 미래를 상정하여 익명으로 저술한 것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반발을 우려하여 출판 즉시 판금(販禁)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21세기 중국의 세계 경영 전략을 다룬 책으로서 중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이며 아시아에서 중국이 과연 무엇을 하려는 지를 스스로 공개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1998년 중국 지인(知人)의 도움으로 원본을 어렵게 입수하여 '21세기 중국은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한 바 있다. 결국 '중국 대전략'은 필자의 번역 출판을 통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당시 필자는 '21세기 중국은 무엇을 꿈꾸는가'의 서문에서 21세기는 아시아가 세계의 발전을 주도하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한중 양국은 상호존중과 신뢰를 전제로 하되 한국은 현대화되고 강력해진 중국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중국은 초강대국으로의 발전 과정에서 한국의 존재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두 책이 출판되었던 1997년 당시 양국은 공통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후 민주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였고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의 국제적 고립에서 서서히 벗어나 개혁·개방의 강도를 더욱 강화하던 전환기였다. 양국은 공통적으로 전환기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당시 중국은 외교와 경제적 목적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강렬한 미소작전을 구사하면서 중국의 외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 지도자들의 연이은 방한, 경제협력 강화 등 전략을 통해 우리나라를 자국의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양국의 정치, 경제적 변화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비교해보는 필자의 마음은 참담하기만 하다. 양국의 변화와 위상의 격차는 이미 천양지차(天壤之差)를 넘어 종속(從屬)을 우려할 정도의 상황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대해 중국에 입국한 국회의원의 정당한 활동 방해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만 여행 방해 등과 같은 정치간섭,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역사조작 등과 같은 상식 밖의 일을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한반도 운명을 자기 멋대로 재단하려 하면서 우리나라의 존재를 안중에도 두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8%를 상회하는 높은 성장을 지속한 결과 GDP는 1996년의 8,150억 달러에서 2006년의 2조 5,600억 달러로 3배가 늘어나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며 구매력을 감안한 GDP는 이미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4년에 인도에게 세계 10위를 내준데 이어 2005년에는 브라질에게 세계 11위도 빼앗겨 세계 12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게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와 호주 또한 우리나라를 바짝 뒤쫓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중국계 경제학자인 앤디 시에 모건스탠리 수석경제분석가로부터 "한국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데 실패한다면 중국의 일개 변방이 될 것"이라는(2006. 9. 2, 조선일보) 비아냥을 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은 이와 같은 경제적 성공을 통해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팽창외교를 전개하면서 정치적 활동 범위를 적극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곤경에 처해있던 아세안(ASEAN)에 대한 지역협력 외교를 공세적으로 추진하면서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고 점차 이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모색을 위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주도하면서 이 지역에서 자국의 위상을 강화한데 이어 서남아,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에 대한 정치와 경제적 접근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대부분 '중국 대전략'에서 제시되었던 방향과 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성공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고루한 이념투쟁과 모험주의를 버리고 미래지향과 실리주의를 선택한 결과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생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불변(不變) 방침을 천명함으로써 국민들에게는 변화와 성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고 외국인들에게는 변화에 동참할 기회와 믿음을 주었다. 덩샤오핑을 계승한 지도자들도 미래와 희망을 추구하면서 경제발전과 실리외교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10여 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외환위기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미래지향적 사고와 전략을 통한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을 모색하기는커녕 역사 바로 세우기, 과거사 청산과 같은 과거지향적 투쟁으로 국민의 분열과 갈등만 키워왔고 이념의 혼란만 초래하지 않았는가?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와 반미를 외치면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지 않았는가?

    이처럼 양국의 성패는 바로 미래와 과거, 개방과 자주, 희망과 응징이라는 가장 평범한 선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국가 중국은 우파적 실리(實利)를 자본주의국가 한국은 좌파적 이념(理念)을 선택한 결과이다. 앞으로 강산이 변하는 또 다른 10년이 지나면 두 나라의 차이는 얼마나 벌어져 있을 것이며 한중관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 것인가? 이를 생각하면 참담하다 못해 끔찍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지금은 바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역사의 교훈을 깨달아야 할 때다. "위기 때 동기를 부여하고 위기 때 국민을 단결시키는 지도자가 위대한 지도자이고, 위대한 국민은 위기 때 비로소 역량이 빛나는 법"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지도자의 각성과 국민들의 분발이 다시금 요청되는 정말로 중차대한 시기이다. 지도자가 각성하지 못하면 국민이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2007년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