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대선이란 대전을 기다리며 2006년 한해를 마무리 중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7일 두 번이나 박정희 육영수, 양친의 영정 앞에 섰다. 양친의 사진 앞에 선 박 전 대표의 평소와 달리 강한 모습을 나타냈다. 마치 앞으로 있을 험난한 대선여정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듯 했다.

    라이벌인 경쟁 대선주자들이 사자성어를 발표하며 새해포부를 밝힌 것과 달리 박 전 대표는 새해 자신의 포부를 양친 앞에서 약속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경북 김천의 혁신도시 예정지를 방문한 뒤 양친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김천의 직지사로 발걸음을 돌렸다.

    직지사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에서 가장 인접한 절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현판이 걸려있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체취가 숨쉬는 곳이다. 선친이 직접 쓴 현판 글씨를 보자 박 전 대표는 "어디서 봐도 알아볼 수 있다"며 선친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직지사 명부전에서는 박 전 대표의 방문을 맞아 박 전 대통령과 육 여사의 제사를 지냈고 박 전 대표는 준비된 영정 앞에 헌화하고 절을 했다.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 전 대표는 양친의 영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양친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만큼 제사 내내 양친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제사가 끝난 뒤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도 박 전 대표는 양친의 영정을 다시 쳐다보며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오후 안동을 방문한 박 전 대표는 안동 향교와 유림 대표 및 청년 유림을 면담하고 안동시장 등을 둘러본 뒤 문경으로 향했다. 서울로 차를 돌리기 전 박 전 대표는 마지막 일정으로 문경의 청운각을 찾았다. 이곳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937년 3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교단에 설 당시 묵었던 하숙집이다. 이 하숙집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문경시가 관리한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박 전 대통령의 기일에 추모식을 연다. 박 전 대표는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찾는다고 했다. 최근 힘든 대선행보를 이어가는 박 전 대표는 이날 이곳에서 희망을 얻은 모습이었다.

    청운각을 방문한 박 전 대표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박 전 대통령이 묵던 방을 찾아 다시 양친의 영정 앞에 선 박 전 대표는 눈을 감았다. 절을 한 뒤 박 전 대표는 이번에도 양친의 영정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생전의 박 전 대통령 사진들을 지켜보며 선친을 그리워했다.

    청운각을 한 바퀴 돌아본 박 전 대표는 자신을 맞으려 모인 인근 주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빽빽한 이날 일정 탓에 지칠 법도 했지만 박 전 대표는 마지막 일정인 청운각 방문에서 가장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힘있는 목소리로 주민들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늦은 시간이고 날씨도 쌀쌀한데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 줘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바로 선친 얘기를 꺼냈다. 박 전 대표는 "전국을 다니다 보면 아버지 체취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곳보다 감회가 남다르다. 이곳은 아버지의 체취가 짙게 남아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가 나라의 큰 꿈을 꾸었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고 덧붙했다.

    박 전 대표는 "나도 나라를 위해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던 모습을 보고 자랐다"며 "그래서 어떻게 하면 국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지 마음 한 구석에 꿈을 갖고 있다"고 말한 뒤 "최선을 다하겠다. 많은 성원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은 '박근혜'를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 주민은 "박 전 대표가 괴로우면 문경시 전체가 괴롭고, 박 대표가 기쁠 때면 문경시 전체가 기쁘다"고 덕담을 건네며 박 전 대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박 전 대표는 이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박 전 대표 측은 "부모님 앞에서 새롭게 다짐하며 새해를 준비하려고 이날 일정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라이벌인 이명박 전 서울특별시장과 고건 전 국무총리 등이 사자성어를 통해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과 달리 이날 박 전 대표는 화려하고 돋보이지는 않았지만 양친 앞에 서서 새해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안동·문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