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진퇴양난의 길에 놓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갑작스레 '군 복무단축'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1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서 군대를 "썩는 곳"이라고 비하하며 군 복무기간 단축을 암시했고 곧바로 청와대는 군 복무기간을 현행 24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는 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21일 막말 수준의 노 대통령 발언을 접하고 한나라당이 처음 던진 입장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나경원 대변인 21일 논평)였고 22일 현안 브리핑을 위해 기자실 마이크를 잡은 유기준 대변인 입에선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입장은 들을 수 없었다.

    유 대변인은 22일 오후 '즉흥적 발상인가'란 제목의 논평을 통해 '군복무기간 단축' 관련 언급을 했지만 논평의 초점은 노 대통령의 '썩는다'는 발언에 맞춰 비난했다. 23일이 되서야 한나라당은 박영규 수석부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내놨다. 박 수석부대변인은 "표를 겨냥한 포퓰리즘적 선심정책"이라고 주장했다. 24일 한나라당은 다시 박 수석부대변인을 통해 논평을 냈다.

    이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은 군 복무기간 단축을 위한 ▲국방력 강화 ▲대선용 포퓰리즘 배제 ▲밀실논의 중단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여야합의 등 4가지 선결조건을 제시했다. 4가지 선결조건만 이뤄진다면 군 복무기간단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회가 중심이 돼 논의해야하고 장기적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이 논평에서도 한나라당은 군 복무기간 단축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고있다. 논평의 초점 역시 "표를 겨냥한 대선용"에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군입대 연령층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상수 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투표권을 갖는 입영 대상자(19~22세)수는 130만 명에 달한다. 더구나 이들의 부모형제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표가 된다. 안 의원은 "대선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이 무조건 반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군 복무기간 단축'이 청와대의 입을 통해 전달되자 두 시간만에 포털사이트엔 찬반 댓글이 수백개나 달릴 정도로 네티즌들의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비난일색이던 반응은 청와대의 군 복무기간 단축 검토 발표 이후 노 대통령의 발언 보다 군 복무기간 단축에 맞춰지며 찬반의견이 양립하고 있다. 

    현재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일부 의원모임에서 이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민감한 문제인 만큼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차기 대선주자들 역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9년 전 전신정당인 신한국당 일각에서 97년 대선을 앞두고(97년 7월) 군 병력을 40만명 감축하자고 제기한 바 있어 한나라당으로선 이번 '군 복무기간 단축'이 고민일 수밖에 없다.

    또 지난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은 복무기간 2개월 감축, 노무현 후보는 4개월 감축을 주장해 결국 2개월 감축으로 결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