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 '백화종칼럼'란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대통령 말을 못 알아듣는 국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후보 지명전에서 맞붙었던 수어드,체이스,캐머런을 각각 국무,재무,국방장관에 앉혔다. 그 때까지 자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차기 대선에서도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요직을 맡긴 것이다. 링컨은 또 캐머런 국방 후임에 ‘멍청하고 무능한 링컨을 쿠데타로 추방해야 한다’고 떠드는 스탠튼을 기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책 ‘노무현이 만난 링컨’ 중 ‘용인술’에 관한 대목을 발췌한 것이다.기자는 이 난에서 스탠튼의 예를 뽑아 노 대통령이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링컨처럼 반대편을 품음으로써 국민통합을 이끌어냈으면 좋겠다고 쓴 적이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던 2004년 3월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주 민주평통 연설을 통해 “링컨의 포용 인사는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링컨 흉내 좀 내보려고 했으나 재미는 별로 못 보고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고 개탄했다. 링컨과 마찬가지로 나도 대선 후보 경쟁자들이었던 김,정씨를 각각 보건복지부와 통일부 장관에 기용함으로써 둘이 비슷한 인사를 했는데 링컨의 경우는 포용인사의 모범으로 꼽히고 내 경우는 왜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항변인 것이다.
물론 과거 경쟁자들을 요직에 기용한 건 두 사람이 같다. 그러나 링컨이 기용했던 사람들은 링컨에 승복하지 않고 있었으며 차기 대선에서까지 링컨의 잠재적 라이벌이었던데 반해,노 대통령이 기용했던 사람들은 노 대통령과 한 배를 타고 있었으며 차기의 라이벌도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또 노 대통령의 책에 따르면 링컨이 기용한 경쟁자들은 링컨의 추종자가 됐으나 노 대통령이 기용한 경쟁자들은 지금 그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사람은 칭송받는데 자신은 배신당하고 욕만 먹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리 됐는지,염량세태 탓 외에 그 원인이 일정 부분 자신에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게 좋겠다.
노 대통령은 연설 중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개념이 다르다”고 안타까워했다. 맞다. 위의 인사에 대한 해석에서도 그렇듯이 노 대통령과 그 반대편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만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노 대통령과 언어가 통하는 사람이 전체 국민 중 10% 미만이라는 데 있다. 국민의 90%가 대통령의 말을 못 알아듣겠다니 국가적 손실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김근태,정동영씨의 장관 기용으로 재미를 못 봤으며,고건씨의 총리 기용도 실패작이었다고 자평했다. 물론 이들 인사로 의도했던 효과를 못 봤다고 했을 뿐 여권의 대선 후보군인 당사자들을 깎아내리진 않았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선 노 대통령이 여권의 대선 후보와 관련하여,자신과 거리를 벌려온 이들이 아닌 제3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새 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내 임기 1년 남짓에 지지율 10% 안팎에 불과하지만,나 아직 안 죽었으며 적어도 여권의 판을 흔들 만한 힘은 남아 있는 현직 대통령이니 죽기 기다리는 골방 늙은이 취급하지 말라는 경고로 들린다.
이 부분도 많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일부 예비주자 캠프에서 노 대통령의 비난은 오히려 아픈 다리 들어주는 격이라고 환영하는 데서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서도 노 대통령이 특정인을 대통령 만들진 못해도 그가 대통령이 못 되도록 할 수야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는 미확인 소문이 있고 보면 여권의 예비 주자들로서는 미상불 신경을 안 쓸 수 없기는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