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 사이에서 우리의 운명이 걸려있는 한반도 장래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고 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향후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장래 운명이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막후 협상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가 되어야 할 한국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6.25 종전 선언'을 포함한 획기적인 대북 제안을 천명했다. 이어 11월 28일과 29일 양일간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회담에서도 미국은 이 문제를 재확인하면서 구체적인 핵 폐기 시한까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2006. 12. 4, www.khhong.com)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북한에게 핵 폐기 시한을 '2008년 말까지'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2007년 한국의 대선(大選)에 이어 2008년 미국의 대선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과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커다란 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대선 결과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만약 한국의 대선 결과가 김대중, 노무현에 이은 좌파정권의 지속으로 결정이 난다면 미국은 이제까지 한미간에 합의되었던 전시작전통제권의 단독 행사와 한미연합사의 해체 일정을 실질적으로 개시하고 이어 주한미군의 본격적인 철수를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극히 실용주의적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반미 정서는 자신들의 전략적 입장을 선회하는 대단히 좋은 호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서 중간선거 이후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확산을 위한 이상주의를 추구하던 네오콘이 퇴조하고 현실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이념보다는 실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주의의 득세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추구해왔던 이념적 이상보다는 자국의 실리에 따라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장래 문제에 대해 북한을 포함하는 주변국들과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에서 좌파정권의 지속에 따른 반미 정서가 지속될 경우 미국은 한국을 대신하여 동북아의 핵심 전략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될 일본과 북한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을 대상으로 하여 한반도 장래 문제를 협상하고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 경우 미국의 전략적 이익 측면에서 비중이 현저하게 약화된 한국은 한반도 장래 문제에 대한 협상을 단지 어깨 너머로 바라보아야 하는 처지로 몰리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와 관련하여 로버트 졸릭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2005년 8월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에게 제시했다는 제안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게 "우리가 중국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 문제에서 그들이 중재자(mediator) 이상의 역할을 하기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고 있으며 한반도가 미국에게도 호의적이고 중국에게도 호의적이 될 수 있는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고 밝혔다.(2006. 11, 월간조선)

    졸릭 전 부장관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미국은 한반도 장래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게 지금처럼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득권과 특수한 이해 관계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 중국으로 하여금 김정일 정권의 교체에 간여하거나 또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이익이 상호 보장되는 선에서 한반도 장래 문제를 협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와 같은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현재 양자간에 한반도 장래 문제의 해결을 위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불원간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의견 교환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경우 과연 자주론자(自主論者)들이 주장하는 민족의 자주(自主)와 자존(自尊)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을까? 100년 전 주변국들의 협상만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카쓰라-태프트 밀약'의 악몽이 아른거릴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이 한반도 문제의 논의에서 배제되는 상황에서도 국가 이익보다 정권 이익에 몰두하여 자주를 앞세운 감성적 대북정책과 과도한 반미친중(反美親中)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유일한 동맹인 미국의 신뢰를 잃었고 새로운 동반자라는 중국으로부터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자주론자들의 천국이 된 한국은 전략적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과거 서독이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동서독간에 교류와 협력을 통한 통일 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외부적으로 독일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이해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서독이 주도하는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한반도 장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것이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가 자주를 앞세워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역사적 업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