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외교가 중요한 나라는 없다. 지구상에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우리가 한반도를 짊어지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그 지정학적인 위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반도는 분단되어 서로 대치하고 있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주변 강대국 사이의 패권 다툼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따라서 외교가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修辭)를 넘어 점차 현실(現實)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기가 교차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좌파정권 10년 동안 외교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는커녕 "우리 민족끼리"라는 환상에 젖어 점차 고립의 길을 자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21세기는 '대결'보다는 '협력'이 그리고 '갈등'보다는 '협상'이 외교의 목표이자 방법으로 중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정권의 자주(自主)와 민족(民族) 우선의 외교는 세계와의 협력과 협상보다는 대결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과 함께 이익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세계 여러 나라와의 갈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세계의 외교는 이와는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핵무기, 환경, 마약, 테러, 국제범죄 등과 같은 초국가적 이슈의 등장은 개별 국가의 특정 목표와 이익 추구를 위한 대결과 갈등보다는 세계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협력과 협상의 필요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외교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에게는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새로운 외교전략의 설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첫째 외교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제도를 개선하고 대외적으로는 개방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외교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국정에서 외교의 우선 순위를 높이고 양자외교에서 다자외교 그리고 정부외교에서 민간외교로 이어지는 다양한 외교망의 확충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관과 민간인을 포함하는 외교 인력을 확충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현대 사회에서 외교력은 한 국가의 국민, 정치, 경제 역량의 정도를 상징하는 총체적 국가 역량의 표출이기 때문에 "외교가 더 이상 외교관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점차 외교의 핵심 개념의 하나로 정착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가 국내정치의 제물이 되지 않도록 무원칙하고 즉흥적인 발상은 지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외교는 국가보다는 특정 정권의 목표와 이념 그리고 국민보다는 지도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외교가 중심이 된 결과 지도자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외교가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여왔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둘째 주변 강대국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외교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에 있어 4강을 모두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동북아의 정세 변화는 우리에게 대미 안주의 외교에서 탈피하여 4강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며 이들의 힘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고도의 균형감각을 갖는 외교전략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에 관한 새로운 세계 규범의 형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질서 특히 동북아 질서는 여전히 강대국 사이의 총체적 역학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유동적 상황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에는 이미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정세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향후 동북아 외교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간의 경쟁으로 규정될 것이다. 양국은 이미 한반도에서 고도의 역학 게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과는 굳건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강력한 한미일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미래협력의 동반자로 포용해야 한다. 미국은 안보동맹, 최대의 우방, 주력시장이라는 안보,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 일본은 감정보다는 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치와 안보 차원의 새로운 동반자로 포용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민족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주의 외교를 지향해야 한다. 좌파정권의 외교가 대내외적으로 논란을 빚는 근본적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실리를 도모하는 대신 "우리 민족끼리"라는 민족주의 이상과 명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명분에 치우치고 있는 좌파정권의 외교는 점차 국제사회에서 비웃음을 받고 있으며 우방(友邦)은 우리를 떠나려 하고 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외교를 수행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은 자국이 국제관계 등에서 위기를 맞았을 때 믿음직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국가를 1, 2개 정도는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의 전통적 기반이었던 한미동맹과 한일관계는 형해화(形骸化)되고 있고 미래협력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한중간에는 아직 기초적인 신뢰가 부족하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우리에게 외교는 바로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며 더욱이 이러한 사고를 주변국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국력이 필요하다.

    결국 외교는 자강(自强)이라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국가이익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정치력, 국가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국방력, 국제사회의 번영에 동참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인적자원을 고루 보유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외교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좌파정권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생존을 확보하고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