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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히 열린우리당에 당하고 밀리던 한나라당이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두고 벌인 여당과의 힘겨루기에서 일단 판정승을 거뒀다. 한나라당은 처음으로 여당의 '허'를 찔렀다.
'전략에서 여당에 앞섰다'다는 자체평가도 나오고 있다. 16일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오랜만에 야당다웠다" "이제 야당다워졌어" "모처럼 한 건했어" "아이디어 좋았어. 누구야"라고 말하며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한나라당의 '단상점거' '철야농성' 카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매번 한나라당은 '카드'를 꺼내는 시점이 틀렸고 이로 인해 당 지도부는 여당과의 극한대치 때마다 '전략부재'란 비판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일단 이번 '전효숙 사태'에선 한나라당이 '카드'를 꺼낸 타이밍은 적중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매번 지적받던 '전략부재' 비판 목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고있다. 그러나 여당과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보여준 모습은 여전히 2%부족하다. 15일 당 소속 사무처 직원들과 국회의원 보좌진들에겐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본회의장 입구를 봉쇄하라는 것이 이들에게 하달된 지시내용이다.
때문에 의원 보좌진들과 당 사무처 직원들은 이날 오전부터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는 여당이 줄 곳 사용해오던 전략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들이 이날 보여준 모습에선 열린당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다. 15일 오전 11시37분. 본회의장 입구 주변에 모인 사무처 직원과 보좌진의 숫자는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숫자가 적었다.
몇 안 되는 인원마저도 제 각기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열린당 의원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전열은 정비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한나라당 보좌진협의회(한보협) 회장이 나서 보좌진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직접 보좌진들을 손으로 붙잡아 회의장 입구에 앉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보좌진들은 이 한보협 회장의 지시를 쉽게 따르지 않았다. 한보협 회장의 지시아래 대다수 의원들이 사용하는 본회의장 입구 주변에 앉아있던 보좌진들의 숫자는 총 14명뿐이었다. 주변에 있던 한나라당 모 의원실 보좌진에게 '총동원령까지 내려졌다며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게 열린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보좌진은 "열린당은 보좌진들에게도 동료애가 있다. 386운동권 출신이 많은 탓일 수도 있지만 의원들이 전투적이고 적극적이다 보니 결국 의원 보좌진들도 여당 의원들처럼 전투적이다"며 "열린당 보좌진들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당의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자기들끼리 전략도 짜는데 비해 한나라당 보좌진들은 시켜도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상황이 급하다고 연락을 해야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치면 자기만 손해란 생각이 앞서 있는데 제대로 모이고 행동할 수 있겠느냐"며 "별로 막겠다는 의지도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지금 전효숙이 문제가 아니라 우린 부동산 문제 때문에 바쁜데…"라며 당 지도부의 전략을 못마땅해 했다. 한 사무처 직원도 "당 지도부가 정말 생뚱맞은 말과 행동을 너무 많이한다"며 "이래서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이 직원은 "김형오 원내대표가 계속 당에서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으니까 이번에 작정한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방식이 옳다는 생각은 안든다"고 말했다.
오후 5시 45분 열린당 몇몇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의원들에 길까지 터주었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본회의장 입구 앞에 쌓아놓은 법전을 흐트러뜨리자 한보협 회장은 "법전이니까 조심해서 다뤄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변의 보좌진들은 "그만하면 됐어"라며 오히려 말렸다.
결국 15일 한나라당이 '전효숙 임명동의안'처리를 막아낸 것은 한나라당의 단결된 힘이 아니라 청와대와 서로 떠넘기기를 한 열린당의 '자중지란'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은 열린당이 막무가내로 나왔으면 '못이기는 척 흉내만 내다가' 또 밀리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