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에선 현재 100일간의 정기국회가 진행중이다. 처리해야 할 민생관련 법안은 100일이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수북히 쌓여있다. 더구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는 불안한 상황이고 경제는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는 난국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당은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고민해야 한다. 법안처리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집권'이란 무거운 과제까지 떠 안은 각 정당이 정상적으로 정기국회를 진행할 리는 만무하다. 결국 부작용은 곳곳에서 터지고 있고 여야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로에게 상처만 입히고 있다.

    9일부터 국회는 대정부 질문을 시작했다. 국회가 현 정부를 상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귀중한 시간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관련부처 장관들은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다. 이날 국회는 정부를 상대로 '정치'관련 질문을 던졌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대정부질문. 시작부터 여당은 야당의 공세로부터 정부를 방어하기에 바빴고 야당 역시 정부와 그를 옹호하는 여당을 질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2시간에 걸쳐 숨가쁘게 진행된 오전질의가 끝나고 정부와 여야 의원 모두 점심을 위해 약 2시간 가량 회의를 중단했다. 임채정 국회의장은 정회를 선포하면서 오후 2시에 회의를 속개하겠다고 공표했다. 시간이 오후 2시를 알리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은 미리 본회의장에 들어와 답변을 준비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은 2시가 넘어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계가 2시 5분을 알리자 본회의장에선 "지금 바로 본회의가 속개되겠습니다. 의원님들께서는 본회의장에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방송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의원들은 몇 되지 않았다. 본회의를 열 수 있는 의원정족수 역시 채워지지 않았다.

    이때 임채정 의장 목소리가 본회의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국회의장석에 있는 마이크를 끄지 않은 탓에 임 의장과 국회사무처 직원의 대화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약속된 회의 시간이 지나도 의원들이 입장하지 않자 임 의장은 국회 사무처 직원에게 "양당 대표도 안나왔네 참…"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계가 2시 15분을 알리자 임 의장은 다시 사무처 직원에게 의원들의 본회의 참석을 요구하는 안내방송을 지시했고 스피커에선 "지금 바로 본회의가 속개되겠습니다. 의원님들께서는 본회의장에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재차 흘렀나왔다. 그래도 의원정족수는 채워지지 않았고 의장석의 마이크 역시 꺼지지 않은 탓에 임 의장의 육성은 계속 들렸다. 임 의장은 거듭 한숨을 내쉬며 "선거도 국회 할 일은 하고 치르든 해야지…"라고 말했다. 곧바로 "아이~ 참!"이란 짜증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때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여야 의원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시계가 2시 20분을 알리자 의원들이 입장하며 겨우 의원정족수를 맞춰 회의를 속개했다. 임 의장은 "의석을 정돈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원이 됐으므로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라는 발언 직전 "아이~ 참!"이란 말을 한 더 내뱉었다. 

    겨우 의원정족수를 맞춰 국회는 오후 대정부 질문을 이어갔지만 본회의장엔 빈자리 투성이였다. 오후에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선 여야 의원들간 인신공격이 난무했고 정부를 상대로 한 야당의 정치공세에 여당 의원들은 야유를 보냈고 이런 여당에 야당은 "떠들지 마"라고 윽박지르는 등의 추태가 회의 내내 진행됐다. 

    임 의장이 찾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당의장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은 결국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시간 김 의장은 부산에서 열린 당의 전국여성위원회 워크숍 참석했고 강 대표는 당의 지원세력인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창립 1주년 기념식이 열린 서울 장충체육관에 있었다.

    이날 대정부 질문 있기 전 양당 대표들은 본회의장에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고 이 연설을 통해 해법은 크게 다르지만 지금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안보불안 해소와 경제회복'이라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를 향해 이런 문제점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야할 대정부 질문에 양당 대표는 불참했다.

    결국 여야 모두 국민을 위한 민생법안처리 보다 '집권'이란 자신들을 위한 과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정치"란 이들의 주장 역시 국민들의 귀엔 거짓으로 들릴 것이다. 국민들은 또 '어느 정당이 잡아도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되새긴 채 다시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말하는 국민들보다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이런 국민들에게 여야 정당 모두 자신들이 2007년 집권을 하면 '지금 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정치에선 아직 그런 '희망'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고 이로인해 힘들고 좌절하는 국민들의 숫자는 점차 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