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핵실험 사태로 불거진, 정부 대북포용정책 기조 수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차기 대선과 맞물리면서 여권 내부가 요동칠 조짐이 나타났다. 우선 겉보기로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대북온건론을 앞세워 ‘대북포용정책 근간 훼손 절대불가’를 주장하는 분위기이지만, 각론에서는 정파별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장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북정책기조 수정 여부 문제가 여권발(發) 정계개편의 핵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온건론의 기저에는 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대북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8년간의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부인하는 꼴로 비쳐지며 범여권 전체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호남 지역기반이 와해되고 대선 전략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위기감에서다. 

    당초 북한 핵실험 사태가 터진 직후 대북 강경 입장을 쏟아냈던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하루만에 온건론으로 돌아선 것과, 강경 진영과 친노(親盧) 그룹, 재야파 등이 잇단 성명발표 등을 통해 “포용정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화만이 해결책” “포용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대북강경책의 실패” “남북경협은 유지돼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앞다퉈 내놓은 점도 이를 방증한다. 지난 13일에는 당 소속 의원 77명이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참여 확대에 반대하며 포용정책 유지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의 중단없는 지속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내 또 다른 일각에서는 현 대북정책기조의 유지에는 동의하면서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 정권의 ‘포용정책’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천정배 의원은 최근 북핵실험 강행의 원인으로 노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꼽았다. 천 의원은 “일부에선 이번 사태의 원인을 대북 포용정책에서 찾는데, 현 사태의 책임을 포용정책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면서 “오히려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쌀․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중단하는 등 참여정부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했던 점이 남북 신뢰구축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여권 ‘제3의 후보’로 꼽히는 천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지역기반인 호남 지지층은 잡아두되, 대선필패로 인식되는 노 대통령과는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되는데, 이는 다분히 ‘노 대통령을 배제하는’ 헤쳐모여식 신당창당론인 정계개편 논의와도 맞물린 모양새다. 차기 대선을 감안해 노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에 나선 모습으로도 비쳐지면서 향후 친노직계 그룹과는 이래저래 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구도다. 

    이와 더불어 당내 중도․보수세력도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적잖은 우려를 나타냈다. 조성태 의원은 지난 10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북한 핵실험이 애들 장난이냐”면서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대북 강경론을 피력했다. 중도성향의 '희망21포럼'을 이끄는 양형일 의원도 최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안보상황의 최대변수가 돌출된 만큼 남북관계의 제반정책을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포용정책을 지속하려는 것은 국제공조에 균열을 야기해 북한의 오판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므로 대북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이들은 향후 상황변화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돼 논란의 불씨로 남아있다. 

    이런 일련의 당내 움직임과 맞물려, 최근 ‘신중도론’을 내세우며 지난 1일 귀국한 정동영 전 의장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정 전 의장은 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만큼, 이번 북핵 사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일단 정 전 의장은 “북핵실험이 포용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주장은 너무도 비논리적”이라며 “포용정책의 근간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어선 안된다”고 말했지만, 그가 꺼내들 북핵 해법 카드는 분명히 차기 대선을 감안한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관측이다. 실제로 추미애 전 의원과의 16일 만남도 이같은 측면에서도 상당한 관심이 쏠린다.

    일단 이같은 여권의 모습이 북핵실험 사태에 따른 대북정책기조 수정 문제가 차기 대선과 맞물리면서 향후 정계개편에 명분을 준 셈이라는 것인데, 결국 대북정책기조 수정 문제는 본격적인 여권 내 차기 대선 경쟁과 함께 차기 주자들과 노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문제와도 맥이 닿으면서 정계개편의 핵심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대북정책 기조 수정 문제가 여권발 정계개편의 구실이 될지언정,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아직까지 뚜렷한 차기 주자라는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다가 민주당을 토막냈던 전력이 있는 열린당에서 대북정책기조라는 단일 명분만으로 쉽사리 행동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북정책기조 수정이란 명분에 앞서 '100년 정당'을 약속했던 스스로에 대한 부정으로 비쳐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