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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노 정권의 쌍둥이 유산(遺産)'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에 노무현 정부가 지나간 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남게 됐다. 2005년 3월 관련 법이 통과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지난 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 행사다.
행정도시와 전작권(戰作權)은 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이 나라를 오랜 기간 떠받쳐온 기반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행정도시는 청와대, 국회, 사법부 그리고 정부 부처 중 통일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 여성부는 서울에 남기고 나머지 12부 4처 2청을 충남 공주·연기로 이전하는 사업이다. 조선왕조가 1394년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지 600여 년 만에 수도가 둘로 쪼개지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공동 행사해온 전작권을 한국이 단독 행사하면 1978년 설립된 한미연합사는 자동 해체된다. 1953년에 맺어진 한미동맹 역시 한미연합사를 바닥에 깔고 있는 만큼 비슷한 운명이다. 50년 넘게 나라 안보를 지탱해 온 기본 뼈대가 내려앉는 것이다. 5년 동안 머무는 정권이 50년 역사와 600년 역사를 한꺼번에 허물고 간다.
둘째, 두 가지 유산 모두 정권이 떠난 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공과(功過)가 가려진다는 점이다. 행정도시는 2012년쯤 부처 이전이 시작돼서 2030년쯤에야 완공된다. 전작권 단독 행사는 빠르면 2009년, 늦으면 2012년에 이뤄질 전망이다. 그때 가서 문제점이 드러나본들 붙잡고 따질 사람도 없다.
셋째, 천문학적인 액수의 청구서가 따라붙는 점도 똑같다. 행정도시를 조성하는 데 소요되는 돈은 국가 재정과 민간 자본을 합해 43조900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와 있다. 전작권 단독 행사에 대한 개별 고지서는 발부되지 않았다. 다만 국방부는 2020년까지 국방 예산이 621조원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 자주 국방을 위한 전력 증강비용이 289조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이 “전작권을 찾아오는 것이 자주 국방의 핵심”이라고 했던 걸 보면 자주 국방 예산 289조원을 전작권 비용으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넷째, 기분만 냈지 손에 남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선택과 집중’으로 경쟁하는 시대다. 대한민국만 수도를 둘로 쪼개는 역주행(逆走行)을 하면서 나라 경쟁력을 향상시킬 묘방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행정도시로 얻게 될 것은 수도권과 지방이 골고루 나눠 갖는다는 형평(衡平) 구호뿐이다. 전쟁 억지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미연합사를 허물면서 나라 안보에 보탬이 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전작권 단독 행사는 자주(自主)라는 깃발 하나를 달랑 꿰차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정도시와 전작권은 둘 다 대선(大選)정치 게임이란 점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행정수도 공약으로 충청표를, “반미(反美)면 어때”를 외쳐서 젊은 표를 각각 긁어 모은 덕분이다.
수도 전체를 옮기는 행정수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서 대신 나온 것이 수도를 쪼개는 행정도시다. 한나라당은 2002년에 이어 2007년에도 충청표를 잃을 수는 없다며 행정도시 법안을 수용했다. 2002년 대선의 행정수도가 2007년 대선 버전으로 업데이트된 것이 행정도시다.
마찬가지로 전작권 단독 행사는 2002년에 재미를 봤던 ‘반미 장사’를 ‘자주장사’로 손질해서 내놓은 경우다. 미국 정부는 전작권 이양이 자신들의 미군운용전략에 들어맞기도 하지만 2007년 한국 대선에서 또다시 반미 자주가 쟁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입장을 정리했다.
노무현 정권은 국정 지지율 최저 신기록을 경신한 허약한 정권이다. 그런데도 역대 정권들이 꿈도 못 꿨던 대역사(大役事)를 두 가지나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대선정치의 볼모로 삼아 이뤄낸 ‘정권의 쾌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