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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5일 사설 <노정권 과오로 남을 한미정상 ‘전작권 전환’ 재확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戰作權) ‘환수’에 대한 양국 공동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환수 목표연도를 포함한 구체적 사항은 10월 워싱턴에서 열릴 연례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전작권 전환’이라고 수식했지만 우리는 한반도 안보를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늪’에 빠뜨릴 수 있는 모험의 선택이라고 판단한다. 국내 전직 국방장관, 예비역 대장 등을 포함한 군사 전문가 집단, 외교부 장·차관 등 외교 전문가 그룹, 지식인, 종교인 등의 줄기찬 문제 제기와 재고 요청에도 불구하고 끝내 전작권 환수를 위한 원칙적 합의로 내달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미국 병력의 크기와 이동 날짜는 한국 정부와 협의해 결론을 내린다”고 한 언급에 미뤄 전작권 이양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표 등 로드맵이 10월 SCM에서 결정될 개연성이 그만큼 더 높아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와 이동 시기까지 거론한 것 자체가 주한미군의 감축을 전제로 상황이 전개돼 나갈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부시 대통령이 “나와 노 대통령은 이 문제가 정치 문제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에 동의했다”고 한 대목에 각별히 주목한다. 미국으로서는 전작권 문제가 한국 내에서 반미운동과 정쟁의 대상이 될 경우 주한미군을 언제든 임의대로 빼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 구상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전세계를 무대로 한 미군 재배치(GPR)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을 ‘붙박이 주둔’ 형태가 아니라 ‘신속 이동군화’하려고 해온 만큼 노 정권이 전작권 이양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호기(好機)’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문제는 10월 SCM에서 ‘전작권 이관 시간표’가 확정돼도 좋을 만큼 국군의 전력이 대북 억제력, 한반도 안보관리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2009년 이양론과 국방부의 2012년 환수 계획 중 그 어느 쪽으로 기울든 한국의 안보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은 양국 안보·외교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미국은 한국의 전작권 단독행사를 전제하지 않고서라도 2008년까지 주한미군 1만25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전작권이 한국군과의 공동행사로 넘어가면 추가감축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북한이 핵 보유를 주장하는데다 미사일 800기 가운데 사거리 300∼500㎞의 미사일 500기가 남쪽을 겨냥하고 있다. 국군의 대북 전략정보의 95%이상, 전술 정보의 70∼80%를 미군에 의존할 정도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추적·감시할 수 있는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체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방개혁안대로 2020년까지 621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차질없이 투자된다 해도 현행 한미연합방위체제를 대체할 수준에는 훨씬 못미친다.
그럼에도 양국 정상이 전작권 이양의 원칙에 합의하면서 한국군 능력에 대한 양국의 신뢰, 주한미군의 지속 주둔 및 유사시 증원을 내세운 것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한국이 전작권을 단독행사할 경우 미국이 당초 연합방위체제에 따라 유사시 전쟁발발 90일 이내에 병력 69만명, 5개 항공모함 전단을 포함한 함정 160척, 항공기 2500여대 등을 보내기로 한 지원계획이 차질없이 실현될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노 정권이 만약 10월 SCM에서 전작권 전환 시간표에 합의하는 과오를 범한다면 역사는 안보에 결정적인 위해요인을 자초한 정권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양국 정상이 6자회담 및 대북제재 방안에 대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강구한다”는 정도로 얼버무린 것도 대북문제에 대한 양국간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미국은 이번에 한국이 반대해도 대북제재에 관해서는 ‘마이웨이’라는 의향을 분명히했다. 앞으로 한미 동맹관계가 더 요동칠 것임을 예고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유일하게 가져다준 반가운 소식을 굳이 찾자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양국관계를 한 차원 격상시킬 방안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협상 가속화에 뜻을 모은 것 정도에 그친다.
50여년 한반도 안보의 근간이 돼온 한미 연합방위체제가 노 정권의 ‘자주’깃발 아래 본격적인 해체과정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대한민국의 엄연한 안보현실이다. 국민이 정권의 ‘안보 폭주(暴走)’를 막아야 한다는 엄중한 책무를 되새겨야 할 절박한 상황이다. 우리가 10월 SCM에서 국군의 능력이 대북억지력을 확보할 때까지 전작권 단독행사와 관련한 결론이 유보돼야 한다고 믿는 것도 그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