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황호택 논설위원이 쓴 ''운동권서클' 청와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해철 씨가 5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을 때 처음 듣는 이름이라 인명사전을 들춰봤다. 전 수석은 사법시험 29회(1987년 합격)로 판검사 경력 없이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해마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몸담았던 곳이다. 전 수석의 검찰 동기생들은 대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지방검찰청에서 부장검사를 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민정수석 혹은 법무수석을 하다가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사례도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그런 일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고검장급이나 지검장급 또는 검찰총장 재목감이 민정수석을 했다.

    안희정 변론팀의 민정수석실

    전 수석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업자’라는 안희정 씨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나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김진국 법무비서관도 안 씨의 변호인이었다. 안 씨 변론팀으로 채운 젊은 민정수석실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 파동을 통해 함량 미달과 일 처리 미숙이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6년 임기의 헌재소장을 만들기 위해 헌재 재판관 사표를 받고 다시 지명하는 편법을 쓰면서도 법률적 논란이나 헌재의 독립성 시비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못했다. 더욱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보낸 뒤에야 재판관직 사표를 수리해 3년 임기의 헌재소장 동의안을 보내 놓고 아무런 절차 없이 6년 임기의 소장으로 변경하는 꼴이 돼버렸다.

    그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비서실 인사의 난맥상을 ‘유흥업소’에 비유했다. 사장 대신 경찰서에 붙들려가거나, 궂은일에 총대 메는 사람이 유흥업소에서는 실세라는 것이다. 조금 심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 그 동네에서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배 째 드릴까요” 같은 조폭 언사를 쓰는 마당에 ‘유흥업소’ 비유에 화내기도 뭣할 것이다.

    집권 초기의 삼고초려는 집권 4년차가 되면서 찾아보기 어렵다. 낯가림을 하는 노 대통령이 편한 사람 돌려쓰기 인사를 하기 때문이다. 인재 풀이 협소한 청와대 비서실에도 성골 진골이 있는 모양이다. 수직 상승을 한 사람들은 대개 ‘노무현 경선 캠프’가 세 들어 있던 여의도 금강빌딩 출신이라고 한다.

    역대 청와대 비서실은 일류들의 집산지였다.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을 영예로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급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험한 말을 하는 동네가 돼 버렸다. 아내를 살해한 전 청와대 행정관 이야기는 길게 말하지 않겠다.

    노 대통령이 집권한 후 청와대 분위기가 운동권 서클(동아리)같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야 영수회담에 배석했던 한 의원은 이런 장면을 봤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이 받아 적는 데 서툴러 땀을 빼다가 발표문안을 다듬기 위해 이병완 비서실장과 상의하는 자리에서 “형 나 이거(받아 적기) 못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의원은 “386 비서관들에게 비서실장은 복학생 형쯤 되고, 노 대통령은 아마 그 위 선배쯤…”이라고 말했다.

    친북, 아마추어, 끼리끼리

    공안기관에 근무하는 L 씨는 작년 6·15 때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실 K 행정관과 함께 평양에 갔다. L 씨는 강정구 씨의 만경대 방명록 서명과 같은 돌발사고를 막기 위해 친북급진 활동가들의 북한에서의 활동상황을 파악하려 해도 알 만한 사람이 없어 애를 먹었다.

    친북 활동가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가 많았다.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는 K 행정관은 친북 활동가들과 ‘형, 동생’하며 어울렸다. L 씨는 K 행정관을 통해 친북 운동권의 북한 내 활동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L 씨는 “K 씨 같은 경력자가 안보정책수석실에 근무한다니 뭔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 키워드 ‘친북’ ‘아마추어리즘’ ‘끼리끼리’를 조합해 한 문장으로 만들면 오늘의 청와대 비서실 모습이다. 어쩌다 그 지경이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