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오늘과 내일'란에 이 신문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욕심 앞에 발가벗은 '진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국을 공산국가로 통일하고 최고지도자에 오른 마오쩌둥(毛澤東)이 참모들을 서재로 초대했다.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진 마오의 서재를 둘러본 참모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치통감’이나 ‘25사’ 같은 왕조시대 제왕들의 통치술과 권력투쟁에 대한 책들이 서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반면, 공산당의 사상적 기틀이 된 마르크스주의 서적은 한 권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서재에 마르크스 서적을 가져다 놓으라고 권했다. 마오가 마지못해 받아들이긴 했지만 실제 책을 꺼내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인민을 위한 봉사’를 구호로 삼았던 마오의 권력지향적 내면을 보여 주는 일화다.

    새삼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진보세력’이라고 주장해 온 사람들의 유별난 ‘자리 욕심’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 때문에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파문의 핵심은 ‘급(級)이 안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인사 청탁’ 문제였다. 유 차관은 경질된 직후 “청와대로부터 인사 압력이 여러 번 있었고 그게 쌓여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 청탁이 계속 있었다는 뜻이다.

    전부터 문화부는 ‘편중인사의 메카’쯤 되는 부처였다. 현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문화부 산하의 주요 단체장을 코드가 같은 단체 출신들로 바꿔 나갔다. 꼭 3년 전인 2003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국립국악원장이 민예총 출신들로 채워지자 문화계는 반발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 문화인들을 전진배치하는 ‘문화혁명’이 아니냐고 했다. 어느 문화계 인사는 “인민군이 남한을 점령하더라도 민심 수습을 염두에 둔다면 이렇게까지 무모한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래도 정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올해 들어 신기남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누나인 신선희 씨가 국립극장장에 임명되면서 또 한번 문화계가 들끓었다.

    문화계 인사들은 자기희생과 절제, 세속적인 것에 대한 의연함 같은 이미지로 비친다. 스스로 ‘진보’를 내세울 때는 여기에 기존 질서와 권위에 저항하는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진영에 참여한 문화계 인사들도 그런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해 대선 승리에도 꽤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낙하산 인사’라도 문화계는 정치집단과 성격이 다르다. 정치운동가들은 ‘자리 욕심’을 ‘지식인의 현실 참여’ 정도로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권력욕’과 ‘사회현실 참여’를 따로 분리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문화계 인사들이 지나치게 자리를 탐내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내세우는 진보의 실체가 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대중이 느끼는 이미지와 너무 상반되기 때문이다.

    실망스럽게도 아직까지 정중히 자리를 사양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정권 측에서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좋은 자리에 가시지 않겠느냐”고 해도 “내가 한자리 차지하려고 진보를 해 온 게 아니다”며 뿌리치는 사람 말이다.

    그래도 순수한 편이라는 문화계가 이렇다면 정치 쪽에 가까운 분야로 갈수록 심해질 것은 뻔하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닌 진보 인사들의 정체성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이다. 사회주의를 한다는 사람들이 옛 권력자들의 탐욕스러운 행태를 반복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지난주 문화부는 3년 전 문화계의 반발을 불렀던 ‘편중 인사’의 주인공,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철호 국립국악원장을 3년 임기로 재임명했다. 역시 강심장이다. 이 정권은 ‘진보’ 간판을 스스로 내려야 한다.홍찬식논설위원